압존법
제일 큰 산 앞에서는 작은 언덕의 높이를 굳이 자랑하지 않는 말하기 규칙이에요.
정의 가장 높은 어른 앞에서 그보다 낮은 사람을 말할 때, 높임말을 잠시 누르고 낮춰서 말하는 우리말 예법이에요. 듣는 사람이 대화 속에 나오는 사람보다 서열이 더 높을 때, 듣는 사람을 최고로 예우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통 규칙이에요.
할아버지 앞에서는 아버지도 아이예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함께 계신 자리를 떠올려 보세요. 나에게는 아버지도 높여 불러야 할 큰 어른이지만, 할아버지 앞에서는 아버지 역시 보살핌을 받는 자식일 뿐이에요. 이때 내가 할아버지께 '아버지께서 오셨습니다'라고 과하게 높여 말하면, 듣는 할아버지의 위치가 모호해질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말에서는 듣는 사람의 위치를 가장 높여 드리기 위해 중간에 낀 사람의 높임을 깎아내리는 방법을 썼어요. 이것이 바로 누를 압(壓) 자에 높일 존(尊) 자를 쓰는 압존법이에요. 높여야 할 대상을 더 큰 어른 앞에서 잠시 꾹 눌러 낮춘다는 뜻이에요.
이 규칙을 따르면 할아버지께 말씀드릴 때는 '할아버지, 아버지가 진지 드시라고 했습니다'처럼 주체 높임 선어말어미(-시-)를 빼고 말하는 것이 전통적인 예절이었어요. 듣는 어른에 대한 깊은 공경의 마음이 문법 규칙으로 굳어진 셈이에요.
회사에서도 부장님을 낮춰 불러야 할까요?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회초년생들이 가장 헷갈려 하는 순간이 있어요. 사장님과 단둘이 있을 때 '김 부장님'의 결재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에 빠지는 것이죠. 전통 방식대로라면 사장님이 부장님보다 직급이 높으니 '부장이 결재했습니다'라고 해야 할 것 같지만,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아요.
실제로 과거 군대나 엄격한 조직에서는 이런 방식을 강요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나보다 직급이 높은 상사를 내 입으로 성씨나 직함만 툭 던져 부르면 듣는 사람도, 나중에 이를 알게 된 상사도 몹시 불편해져요. 직장은 혈연으로 맺어진 가정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결론부터 말하면 국립국어원의 표준 언어 예절에 따라 직장에서는 압존법을 쓰지 않는 것이 올바른 규칙이에요. 따라서 사장님 앞이라도 '김 부장님께서 결재하셨습니다'라고 상사를 온전히 존대하여 말하는 것이 현대 사회생활의 올바른 예절이에요.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압존법은 애초에 엄격한 상하 위계가 존재하는 전통적인 가족 관계를 바탕으로 생겨난 특수한 언어 규칙이에요. 조부모, 부모, 손자처럼 혈통으로 묶인 서열 구조 안에서만 매끄럽게 작동하던 가족 예절이었던 셈이에요.
가족 밖의 학교나 직장 같은 사회적 관계에서는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된 인격체이자 동료예요. 내가 사장님을 높인다고 해서 내 직속 상사의 인격이나 직책까지 깎아내려야 할 이유는 전혀 없어요. 현대 국어는 듣는 이와의 관계뿐 아니라 말하는 대상에 대한 존중도 함께 고려해요.
따라서 이제는 압존법을 무리하게 사방에 적용할 필요가 없어요. 가정 내에서 조부모님께 부모님을 낮춰 부르는 전통의 아름다움은 살리되, 사회에서는 만나는 모든 선배와 동료를 자연스럽게 존중하는 유연한 태도가 중요해요.
🤔 흔한 오해
회사에서 사장님과 대화할 때는 부장님을 낮춰 '김 부장이 보고했습니다'라고 해야 한다.
직장에서는 압존법을 쓰지 않는 것이 표준 예절이에요. '김 부장님께서 보고하셨습니다'처럼 존칭을 붙여 말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에요.
🧺 일상에서 만나요
가장 높은 어른을 위해 중간 사람의 높임말을 잠시 낮추는 전통 예법이지만, 직장에서는 쓰지 않는 것이 원칙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