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인상주의는 19세기 후반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미술의 한 흐름이에요. 사물의 뚜렷한 형태나 엄숙한 이야기 대신, 햇빛과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찰나의 빛과 색채를 포착해 캔버스에 생생하게 담아냈어요.
찰나의 빛을 잡으려 밖으로 나간 화가들
옛날 화가들은 야외에서 간단한 스케치를 하더라도, 완성작은 일정한 빛이 드는 실내 작업실에서 오랜 시간 공들여 그리는 경우가 많았어요. 신화에 나오는 신들이나 역사 속 위대한 영웅들을 눈에 거슬리는 붓 자국 하나 없이 매끄럽게 그리는 것이 정답이었죠.
하지만 인상주의 화가들은 앞선 화가들의 야외 작업 전통을 이어받아, 무거운 이젤(그림을 받치는 대)과 캔버스를 챙겨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야외에서 그림을 완성하려 했어요. 자연 속에서 태양의 위치와 구름의 흐름에 따라 주변 풍경의 색이 매 순간 마법처럼 달라지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에요.
아침 햇살을 받는 강물과 노을이 붉게 물든 강물은 완전히 다른 색채를 띠어요. 화가들은 눈앞에서 반짝이다가 금세 사라져 버리는 순간의 빛과 분위기를 재빨리 캔버스 위에 붙잡아 두려고 했어요.
빛의 밝고 선명한 느낌을 살리려고 물감을 팔레트에서 많이 섞지 않았어요. 대신 순수한 색을 짧고 빠른 터치로 나란히 툭툭 찍어, 멀리서 보면 눈 속에서 색이 섞여 보이도록 했답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인상주의의 등장은 물감 기술의 발전 같은 시대적 배경과 관련이 있고, 사진기의 등장도 영향을 준 요인 가운데 하나로 자주 꼽혀요. 이전에는 돼지 방광 주머니에 물감을 보관했는데, 한번 뚫으면 다시 막기 어렵고 물감도 금세 굳어서 야외로 들고 나가기가 무척 번거로웠어요.
하지만 가볍고 뚜껑을 닫을 수 있는 튜브 물감이 발명되면서 화가들은 비로소 자유롭게 들판과 거리로 나갈 수 있게 되었어요. 비슷한 시기에 대상을 실물 그대로 정밀하게 기록하는 사진도 등장했어요.
사진 때문에 화가들이 그림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해석도 있지만, 그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는 여러 견해가 있어요. 화가들은 실물 복제를 넘어서서 화가의 눈에 비친 주관적인 빛의 인상을 표현하는 새로운 길을 개척했어요.
또한 사물의 색이 늘 같은 것이 아니라 빛에 따라 달라 보인다는 점에 주목했어요. 흔히 사과는 빨갛다고 생각하지만, 밝은 햇빛 아래서는 노란빛을 띠고 그늘진 곳에서는 푸르스름한 보랏빛으로 변한다는 원리를 그림에 적극적으로 반영했답니다.
처음에는 조롱거리였던 미완성 그림
지금은 가장 널리 사랑받는 그림 양식 가운데 하나지만,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는 엄청난 비난과 조롱을 한몸에 받았어요. 윤곽선이 흐릿하고 물감 자국이 울퉁불퉁 튀어나와 있어 당시 사람들의 눈에는 그리다 만 낙서처럼 보였거든요.
당시 미술계를 주름잡던 관전 '살롱'의 엄격한 심사위원들은 이들의 그림을 자주 퇴짜 놓았어요. 참다못한 화가 클로드 모네와 동료들은 1874년에 직접 따로 모여 전시회를 열었어요.
이때 모네가 출품한 항구 풍경화의 제목이 〈인상, 해돋이〉였어요. 이 그림을 본 풍자 신문의 비평가 루이 르루아는 '벽지 무늬보다 완성도가 떨어지고, 그저 인상만 대충 끄적거려 놓았다'고 비꼬았어요. 여기서 비아냥거리며 부른 말이 굳어져 '인상주의'라는 공식 명칭이 되었답니다.
비록 출발은 비웃음 속에서 시작되었지만, 정해진 규칙을 깨부수고 순간의 감각을 솔직하게 담아내려 했던 이들의 용기는 훗날 현대 미술이 활짝 피어나는 가장 중요한 디딤돌이 되었어요.
흔한 오해
인상주의 화가들은 그림 실력이 부족해서 대충 흐릿하게 그렸다.
그림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시시각각 사라지는 빛의 순간적인 변화와 반짝임을 빠르게 포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거친 붓터치를 사용한 거예요.
일상에서 만나요
모네는 같은 수련 연못을 아침, 낮, 저녁마다 달라지는 빛에 따라 수십 번 넘게 반복해서 그렸어요.
르누아르는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어른거리며 사람들의 옷에 떨어지는 빛망울을 화폭에 담아냈어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정해진 틀과 사물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햇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순간의 빛과 색채를 포착한 미술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