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상자를 열어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고양이가 살아있는 상태와 죽은 상태로 동시에 겹쳐 있어야 한다는 이상한 결론이 나오는 사고실험이에요. 원자처럼 아주 작은 미시 세계의 물리 법칙을 우리가 사는 일상 세계에 그대로 대입했을 때 생기는 모순을 보여주기 위해 고안되었어요.
뚜껑을 닫은 상자 속에서 벌어지는 일
상자 안에 고양이 한 마리와 특수한 기계 장치가 함께 들어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이 장치 속에는 한 시간 동안 50% 확률로 붕괴할(방사선을 내뿜으며 다른 원자로 바뀔) 수 있는 방사성 원자 한 개와 독가스 병이 들어있어요.
원자가 붕괴하면 감지기가 이를 감지해 망치를 떨어뜨리고 독가스 병을 깨뜨려요. 반대로 원자가 온전하게 남아있으면 독가스는 나오지 않고 고양이도 무사히 살아남아요.
원자나 전자 같은 미시 세계를 다루는 물리학인 양자역학에서는, 확인하기 전까지 원자가 붕괴한 상태와 붕괴하지 않은 상태가 반반씩 섞여 있다고 보아요. 그렇다면 이 원자와 연결된 고양이 역시 상자를 열어 확인하기 전까지는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죽어있는 상태로 겹쳐 있어야 한다는 이상한 결론이 나와요.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왜 고양이를 상자에 넣었을까요?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사고실험을 제안한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는 양자역학의 기묘함을 찬양하려고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당시 과학자들이 내놓은 설명이 상식적으로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를 꼬집기 위해 만든 역설이었죠.
전자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미세한 입자에서는 여러 가능성이 겹쳐 있는 '양자 중첩'이 실제로 일어나요. 하지만 이 규칙을 고양이처럼 커다란 현실의 물체에 그대로 적용하면 상식 밖의 모순이 생겨나요.
즉, 슈뢰딩거는 고양이라는 극단적인 비유를 통해 미시 세계의 확률적 성질을 현실 세계로 마구 넓혀 설명하는 방식이 얼마나 이상한 결론에 이르는지 보여 주려 했어요. 당연히 실제로 살아있는 고양이를 상자에 넣고 위험한 실험을 한 적은 없어요.
관측하는 순간 현실이 정해질까요?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일상에서 삶과 죽음이 겹쳐 있는 고양이를 결코 볼 수 없을까요? 과거에는 관측자가 상자 뚜껑을 열어 안을 들여다보는 순간에 비로소 고양이의 생사가 하나로 정해진다고 설명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오늘날 많은 물리학자는 의식을 가진 사람이 보지 않더라도, 주변과의 물리적인 상호작용이 겹침 상태를 무너뜨린다고 설명해요. 상자 속의 원자나 장치는 상자 벽, 공기 분자, 빛 등 수많은 주변 환경과 쉼 없이 부딪히고 에너지를 주고받아요.
이처럼 주변과 부딪히며 양자적인 겹침 상태가 순식간에 깨지는 현상을 결어긋남(상태의 중첩이 사라지는 현상)이라고 불러요. 우리가 사는 거시 세계에서는 이 과정이 눈 깜짝할 새보다 훨씬 빠르게 일어나므로 겹친 고양이를 볼 수 없어요. 다만 결어긋남만으로 여러 가능성 가운데 왜 하나의 결과만 나타나는지까지 설명되는지에는 여러 견해가 있어요.
흔한 오해
슈뢰딩거는 실제로 고양이를 상자에 넣고 독가스 실험을 진행했다.
이것은 머릿속으로만 진행한 가상의 사고실험이에요. 실제 동물을 사용한 적이 없으며, 이론의 모순을 짚어내기 위한 비유였어요.
슈뢰딩거는 고양이가 진짜로 반쯤 죽어있는 상태라고 믿었다.
슈뢰딩거는 오히려 고양이가 반쯤 살고 반쯤 죽어 있다는 결론이 터무니없다는 점을 보여 주며, 당시 양자역학 해석의 문제를 지적하려고 이 역설을 만들었어요.
일상에서 만나요
동전을 공중에 던진 뒤 손등으로 덮었을 때처럼, 열어보기 전까지 앞면과 뒷면의 가능성이 공존하는 상황을 설명할 때 비유로 쓰여요. 다만 덮인 동전은 이미 답이 정해져 있고 우리가 모를 뿐이지만, 양자 중첩은 관측 전에 값 자체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이 달라요.
양자 컴퓨터는 0과 1이 겹쳐 있는 중첩을 이용해 여러 가능성을 한꺼번에 다루지만, 결과를 읽는 순간 답은 하나만 남아요. 그래서 원하는 답의 확률만 커지도록 파동을 겹쳐 주는 특별한 계산법을 쓸 때에만 빨라져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미시 세계의 양자 중첩 현상을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끌고 왔을 때 일어나는 모순을 꼬집은 가상의 사고실험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