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서멀 구리스는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나 그래픽카드(GPU)처럼 열이 심하게 나는 부품과 열을 식혀주는 냉각기(쿨러) 사이에 바르는 끈적한 물질이에요. 금속 표면의 보이지 않는 미세한 공기 틈을 빽빽하게 메워 열이 시원하게 빠져나가도록 도와줘요.
매끄러워 보이는 금속도 현미경으로 보면 울퉁불퉁해요
새로 산 냄비 바닥을 만져보면 아주 매끄럽게 느껴져요. 하지만 전자현미경으로 확대해 보면 깊은 골짜기와 뾰족한 봉우리가 가득한 산맥처럼 울퉁불퉁해요. 컴퓨터 부품인 중앙처리장치(CPU) 덮개와 열을 빼앗는 금속 냉각판(히트싱크)도 겉보기와 달리 표면이 무척 거칠어요.
이 두 금속을 그냥 맞붙이면 닿는 면적보다 닿지 않는 빈틈이 훨씬 더 많아져요. 그 빈틈에는 필연적으로 공기가 갇히게 돼요. 그런데 공기는 열을 거의 전달하지 못해 단열재 역할을 해요. 열이 냉각판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부품 안에 갇히는 현상이 생기는 이유예요.
서멀 구리스는 바로 이 공기 틈을 쫓아내기 위해 발라요. 치약처럼 걸쭉하고 끈끈한 액체 형태라서 금속 표면의 미세한 골짜기 속으로 파고들어가 빈틈을 빈틈없이 채워요. 열이 멈추지 않고 바로 건너갈 수 있도록 매끄러운 열전달 통로를 만들어 주는 거예요.
듬뿍 바른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에요
무언가를 바를 때 많이 바를수록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쉬워요. 하지만 서멀 구리스는 꼭 그렇지는 않아요. 서멀 구리스 자체가 열을 전달하는 능력은 구리나 알루미늄 같은 순수 금속보다 훨씬 떨어져요. 단지 열을 거의 못 전하는 공기보다 수십에서 수백 배 나을 뿐이에요.
서멀 구리스를 너무 많이 바르면 쿨러를 고정할 때 남는 양이 대부분 옆으로 밀려나서 온도 차이는 보통 크지 않고, 넘쳐서 지저분해질 수 있어요. 반대로 너무 적게 바르면 표면이 다 덮이지 않아 공기 틈이 남을 수 있어요. 가장 이상적인 바름은 두 금속의 높은 봉우리끼리는 직접 맞닿고 오직 움푹 파인 골짜기만 얇게 채우는 상태예요.
그래서 조립 전문가들은 콩알 크기나 쌀알 크기만큼만 살짝 짜서 올려요. 그 위에 냉각기를 얹고 나사로 꾹 눌러 조이면 그때 생기는 압력에 의해 구리스가 종이 한 장보다 얇게 퍼지며 골고루 자리를 잡아요.
시간이 지나면 굳어서 제 역할을 못해요
컴퓨터를 몇 년 동안 쓰다 보면 팬이 굉음을 내며 돌고 컴퓨터가 버벅거리는 일이 생겨요. 열을 식히지 못해 부품 스스로 속도를 늦추는 현상(쓰로틀링)이 나타난 거예요. 부품 청소를 해도 온도가 내려가지 않는다면 서멀 구리스가 낡았을 수 있어요.
서멀 구리스 속에는 열을 잘 전하는 미세한 세라믹이나 금속 가루와 이를 끈적하게 묶어주는 오일 성분이 섞여 있어요. 컴퓨터가 뜨거워졌다 식기를 오랜 기간 반복하면 부품이 늘었다 줄었다 하면서 구리스가 가장자리로 조금씩 밀려나기도 하고(펌프아웃), 오래 높은 온도에 놓이면 오일 성분이 빠져 말라붙기도 해요. 딱딱하게 굳어버린 구리스는 가뭄 든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져 다시 공기 틈을 만들어요.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구리스가 밀려나 생긴 빈자리나 마르면서 생기는 미세 균열이 열 전달을 가로막는 단열벽이 돼요. 그래서 몇 년 쓴 컴퓨터는 굳은 구리스를 알코올로 깨끗이 닦아내고 새 서멀 구리스를 다시 도포하면 온도가 눈에 띄게 내려가기도 해요.
흔한 오해
서멀 구리스는 무조건 두껍고 듬뿍 바를수록 냉각이 잘된다.
서멀 구리스는 금속보다 열전도율이 훨씬 낮아요. 다만 많이 발라도 쿨러를 고정하면 남는 양은 대부분 옆으로 밀려나 효과가 거의 늘지 않고, 너무 적으면 빈틈이 남아요. 접촉면의 빈틈이 덮일 만큼 얇고 고르게 퍼지는 것이 핵심이에요.
일상에서 만나요
새로 조립한 고성능 게이밍 컴퓨터의 CPU 위에 쌀알만큼 짜서 쿨러를 장착해요.
3년 넘게 사용해 온도가 치솟는 노트북의 굳은 서멀 구리스를 닦아내고 새로 발라 온도를 낮춰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서멀 구리스는 CPU와 쿨러 사이의 미세한 공기 틈을 메워 열을 시원하게 빼내 주는 열 전달 물질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