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물체나 분자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과 아무리 돌려도 포개지지 않는 성질이에요. 이런 분자는 거울상 짝이 따로 있고, 그 한 쌍을 거울상 이성질체라고 불러요. 둘은 대부분의 성질이 같지만, 상대도 한쪽 손을 가진 자리에서는 다르게 굴어요.
왼손과 오른손처럼 닮았지만 다른 모양
두 손바닥을 마주 대어 보세요. 왼손과 오른손은 서로의 거울상처럼 마주 봐요. 거울에 오른손을 비추면 영락없는 왼손의 모습이 나타나죠.
이번에는 두 손 모두 손등을 위로 한 채 오른손을 왼손 위에 얹어 보세요. 엄지가 서로 반대쪽을 가리켜서 포개지지 않아요. 아무리 돌리고 비틀어도 두 손을 똑같이 겹칠 수는 없어요. 장갑이 오른손용과 왼손용으로 따로 있는 까닭이에요.
분자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요. 가장 흔한 경우는 탄소 하나에 서로 다른 원자나 원자단 네 개가 붙은 때예요. 그러면 거울에 비춘 모습과 아무리 돌려도 포갤 수 없는 짝이 생겨요. 이렇게 거울상과 겹치지 않는 성질을 카이랄성이라고 불러요.
녹는점은 같은데 왜 냄새와 반응은 다를까요?
거울상 관계인 두 분자는 여러 면에서 쌍둥이처럼 똑같아요. 이루는 원자가 같아서 분자의 무게가 같고, 서로 거울에 비친 꼴이라서 밀도나 녹는점·끓는점처럼 손을 가리지 않는 성질도 같아요.
둘이 갈리는 것은 상대도 한쪽 손을 가진 자리에 들어갈 때예요. 대표적인 자리가 코의 냄새 수용체와 몸속 효소예요. 이런 단백질도 손이 있는 분자로 이루어져 있어서, 오른손 장갑이 두 손을 다르게 받아들이듯 두 거울상을 다르게 받아들여요.
'카본'이라는 분자가 좋은 예예요. 이루는 원자는 같은데 한쪽 거울상은 스피어민트 향이 나고, 반대쪽 거울상은 호밀빵에 넣는 캐러웨이 씨앗 냄새가 나요. 냄새 수용체가 두 손을 서로 다르게 알아보기 때문이에요. 빛에서도 차이가 드러나요. 한 방향으로만 떨리게 거른 빛을 통과시키면 두 거울상은 그 빛을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돌려요.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생명계가 선택한 한쪽 손의 세계
지구의 생명체는 많은 경우 한쪽 손만 골라 써요. 단백질을 이루는 아미노산은 거의 모두 L-형이고, DNA 뼈대의 당은 D-형이에요. 그래서 몸속에서 일하는 분자를 다룰 때는 어느 손인지가 중요해져요.
합성으로 분자를 만들 때는 두 손이 함께 생기기 쉬워요. 비타민 E의 라벨에 붙은 d-와 dl-이 그 흔적이에요. d-형은 자연에서 얻은 한 가지 모양이고, dl-형은 합성하면서 생긴 모양들이 고루 섞인 것이에요. 비타민 E에는 손을 가르는 자리가 셋이라, 합성품에는 여덟 가지 모양이 섞여 있어요.
한쪽 손만 골라내면 늘 문제가 풀리는 것도 아니에요. 진정제로 쓰였던 탈리도마이드를 두고 '한쪽 거울상만 썼더라면 피해를 막았을 것'이라는 말이 돌곤 해요. 그런데 이 분자는 몸 안에서 두 거울상이 서로 바뀌어요. 한쪽만 골라 넣어도 곧 두 손이 섞이게 된다는 뜻이에요.
흔한 오해
거울상 관계인 두 카이랄 분자는 녹는점이나 끓는점 등 모든 물리적 성질이 서로 다르다.
녹는점, 끓는점, 밀도처럼 대칭적인 환경에서 측정하는 성질은 두 분자가 완전히 같아요. 둘이 차이를 보이는 것은 편광된 빛을 회전시키는 방향이나, 효소나 수용체처럼 상대방도 한쪽 손을 가진 자리에 들어갈 때뿐이에요.
탈리도마이드의 부작용은 원하는 작용을 나타내는 거울상 분자만 분리해서 썼다면 완전히 막을 수 있었다.
이 분자는 몸 안에서 두 거울상이 서로 바뀌어요. 그래서 한쪽만 정제해 썼더라도 곧 두 형태가 섞였을 것으로 봐요.
일상에서 만나요
스피어민트 향을 내는 카본과 캐러웨이 씨앗 향을 내는 카본은 원자 구성이 같은 거울상 짝이에요.
우리 몸의 단백질을 이루는 아미노산은 거의 모두 L-형이라는 한쪽 손 구조예요.
비타민 E 라벨의 d-α-토코페롤은 자연에서 얻은 한 가지 모양이고, dl-α-토코페롤은 합성할 때 생긴 여덟 가지 모양이 섞인 것이에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카이랄성은 거울에 비친 모습과 포개지지 않는 성질이에요. 거울상 짝은 녹는점처럼 손을 가리지 않는 성질은 같지만, 냄새 수용체처럼 손이 있는 상대 앞에서는 다르게 굴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