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같은 '잘한다'라는 말도 어떤 자리에서 쓰이느냐에 따라 칭찬이 되기도 하고 꾸중이 되기도 해요. 화용론은 말이 놓인 상황과 말하는 사람의 의도까지 살펴 뜻을 밝히는 언어학 분야예요. 문장 자체의 뜻보다, 그 문장이 그 자리에서 실제로 해내는 일에 관심을 둬요.
글자 뜻과 속뜻이 갈릴 때
밤늦게 들어온 자녀에게 부모가 '지금 몇 시니?'라고 물어요. 이 말을 시계를 확인해 달라는 부탁으로 듣는 사람은 드물어요. 우리는 그것이 '너무 늦었다'는 꾸중이라는 것을 곧바로 알아채요.
식탁에서 '소금 좀 건네주실 수 있어요?'라고 말할 때도 비슷해요. 글자 그대로 보면 상대의 능력을 묻는 질문이지만, 실제로는 소금을 달라는 부탁이에요. 듣는 사람도 능력을 설명하는 대신 소금을 건네줘요.
이처럼 문장이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뜻을 함께 실어 나르는 것을 함축이라고 불러요. 화용론은 글자 뜻과 실제로 전해지는 뜻 사이의 거리를 다뤄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서로 협력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런 짐작이 통해요.
상황이 빈칸을 채워요
'이거 어제 여기 두고 갔어요.'라고 적힌 쪽지를 길에서 주웠다고 해 볼게요. 문법에 어긋난 곳은 없지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요. '이거'가 무엇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어제'가 며칠인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이런 말들은 상황이 주어져야 가리키는 대상이 정해져요. 누가, 언제, 어디서 말했는지가 문장의 빈칸을 대신 채워 주는 셈이에요.
목소리와 사이도 빈칸을 채워요. 웃으며 건네는 '잘한다'는 칭찬이 되고, 실수한 사람 뒤에서 들리는 '잘한다'는 나무람으로 들려요. 화용론은 이렇게 문장 밖의 상황이 뜻을 완성하는 과정을 살펴요.
그래서 낱말과 문법을 잘 알아도 대화가 어긋나는 일이 생겨요. 상황을 함께 읽어야 상대의 말이 온전히 들려요.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화용론은 의미론과 짝을 이루면서도 맡은 자리가 달라요. 의미론은 문장 자체가 지닌 뜻을 따지는 분야이고, 화용론은 그 문장이 특정한 자리에서 무엇을 해내는지를 따져요.
말이 곧 행동이 되는 경우를 보면 차이가 또렷해져요. '약속할게요'라고 말하는 순간 약속이 생기고, '미안해요'라고 말하는 순간 사과가 이루어져요. 이런 말은 사실을 전하기보다 그 자리에서 일을 만들어 내는 쪽에 가까워요.
속뜻을 읽는 방식은 문화와 사이에 따라서도 달라져요. 같은 표현이라도 가까운 친구에게 들을 때와 윗사람에게 들을 때 다르게 읽혀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오해가 생기는 자리를 짚어 주는 것도 화용론의 몫이에요.
흔한 오해
말의 속뜻을 읽는 것은 눈치나 감각의 영역이라 학문으로 다룰 규칙이 없다.
대화에는 서로 필요한 만큼만 말하고 참말을 한다고 믿는 협력의 원리처럼 되풀이되는 규칙성이 있어요. 화용론은 그 규칙성을 찾아 설명하는 분야예요.
문장의 뜻은 낱말과 문법만 알면 사전을 찾아 다 알아낼 수 있다.
'이거', '여기', '어제' 같은 말은 누가 언제 어디서 말했는지가 정해져야 가리키는 대상이 잡혀요. 상황이 빠지면 뜻이 비어 있어요.
일상에서 만나요
오랜만에 만난 사람에게 건네는 '밥 먹었어?'가 식사 여부보다 안부를 묻는 인사로 쓰이는 경우예요.
창문 곁에 선 사람이 '여기 좀 춥네요'라고 말해 창문을 닫아 달라는 부탁을 대신하는 경우예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문장이 놓인 상황과 말하는 사람의 의도까지 살펴, 글자 뜻 너머의 속뜻과 말이 해내는 일을 밝히는 언어학 분야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