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테크 이야기

쿼츠 파동과 스위스 시계 산업

일본이 무너뜨린 판에서, 무너진 쪽이 종목을 갈아타고 돌아온 이야기

  • 읽는 데 약 25분
  • 1927 – 2025
  • 챕터 10개
  • 그림 4장
  • 출처 33건

2026년 7월, 스위스 시계 수출이 오랜만에 반등했다는 통계가 나왔어요. 한 달 수출액이 26억 스위스프랑으로 1년 전 같은 달보다 9.6% 늘었고, 두 해 연속 줄어들던 흐름이 일곱 달 누적으로 플러스로 돌아섰어요. 시계가 경제 뉴스에 오르는 건 대개 이런 식이에요. 몇 퍼센트가 늘었고 줄었다는 이야기요.

그런데 이 통계에는 이상한 구석이 하나 있어요. 스위스가 2025년 한 해 동안 내보낸 손목시계는 1,460만 개예요. 같은 해 중국은 5억 8,950만 개를 내보냈어요. 개수로는 40분의 1이죠. 그런데 금액으로 보면 스위스가 308억 달러, 중국이 49억 달러예요. 개수로 크게 지면서 금액으로 크게 이기는 나라가 하나 있는 거예요.

이 어긋남은 우연이 아니에요. 한 산업이 통째로 무너졌다가 전혀 다른 산업이 되어 돌아온 흔적이거든요. 무너뜨린 쪽은 일본이었고, 무기는 손톱보다 작은 수정 조각이었어요. 이 어긋남이 얼마나 깊은지부터 보고, 그다음에 그 조각이 어디서 왔는지로 거슬러 올라가 볼게요.

한눈에 보는 연표

미국

  1. 1927 벨 연구소, 최초의 쿼츠 시계를 만들다 (실험실 장비)
  2. 1960 불로바 아큐트론, 소리굽쇠로 월 오차 1분을 보증

스위스

  1. 1967 뇌샤텔 천문대 경연에서 스위스 CEH의 쿼츠가 우승

일본

  1. 1968 제네바 천문대 경연 1위가 세이코로 바뀌다
  2. 1969 세이코 쿼츠 아스트론 발매, 45만 엔
  3. 1974 카시오트론 — 계산기 회사가 시계 시장에 들어오다

스위스

  1. 1982 ASUAG 파산, 은행이 스위스 시계 대기업 청산을 검토
  2. 1983 첫 스와치 발매, ASUAG·SSIH 합병
  3. 1985 하이에크 그룹이 합병 회사 지분 과반을 인수
  4. 1988 롤렉스 데이토나에 제니트 엘 프리메로가 얹히다

현대

  1. 2015 애플워치 출시 — 손목 위의 경쟁자가 다시 등장
  2. 2025 스위스 수출 256억 프랑, 2년 연속 감소

개수로 지고 금액으로 이기는 시장

시계 산업의 통계는 두 벌로 존재해요. 몇 개를 만들었는가, 그리고 그걸로 얼마를 벌었는가. 보통 두 통계는 비슷한 방향을 가리켜요. 많이 만든 쪽이 많이 버니까요. 시계는 그렇지 않아요.

2025년 손목시계 수출 수량을 많은 순서로 늘어놓으면 중국이 5억 8,950만 개로 압도적인 1위예요. 홍콩이 9,400만 개, 스위스가 1,460만 개, 독일이 1,210만 개, 미국이 1,120만 개로 뒤를 이어요. 스위스는 3위인데, 2위 홍콩에도 한참 못 미치고 바로 아래인 독일·미국과는 별 차이가 없어요.

같은 해 금액으로 다시 줄을 세우면 순서가 뒤집혀요. 스위스가 308억 달러로 1위, 홍콩이 63억 달러, 중국이 49억 달러, 프랑스가 33억 달러예요. 개수로 중국의 40분의 1이던 나라가, 금액으로는 그 중국을 여섯 배 넘게 앞서요.

이유는 한 줄이에요. 시계 한 개당 평균 수출가가 스위스는 2,018달러, 중국은 4달러거든요. 약 500배 차이죠. 수량 통계와 금액 통계가 정반대의 답을 내놓는 시장이라, 어느 쪽 숫자를 인용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통째로 뒤집혀요.

여기서 하나 짚고 갈 게 있어요. 이 숫자들은 전부 수출가예요. 세관을 통과할 때 신고한 값이지 매장에서 손님이 내는 값이 아니에요. 스위스 시계산업연맹(FH)은 자기 통계가 최종 소비자 판매가가 아니라고 직접 밝혀 두었어요. 스위스 안에서 팔린 시계도, 중고 거래도 여기엔 안 들어가요. 그러니 '스위스 시계 시장 규모'와 '스위스 시계 수출액'은 다른 말이에요.

세계 시계 생산 수량에서 스위스가 차지하는 몫은 흔히 2% 정도로 이야기돼요. 나머지는 개당 몇 달러짜리 물건이고, 그것도 엄연히 시계예요. 다만 우리가 '시계 산업'이라는 말에서 떠올리는 장면은 대개 저 2% 쪽이죠. 광고에 나오는 것도, 백화점 유리장 안에 있는 것도 그쪽이니까요.

이 기묘한 구조는 처음부터 있던 게 아니에요. 쿼츠 시계가 나오기 전만 해도 스위스는 세계 시계 시장의 절반쯤을 쥐고 있었다고 이야기돼요. 그게 개수 기준인지 금액 기준인지는 자료에 분명하지 않지만, 적어도 그때는 두 통계가 이렇게 갈라져 있지 않았어요. 지금의 모양은 한 번 완전히 무너진 뒤에 남은 자국이에요. 만들어진 시기가 있고, 만든 사건이 있어요.

여기서 기억할 것 개수와 금액이 갈라진 이 한 장면이 이야기의 결말이에요. 나머지는 이 결말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따라가는 과정이고요.

책장만 하던 시계를 손목에 올리기까지

수정 조각에 전기를 걸면 아주 일정한 속도로 떨려요. 그 떨림을 세어 초를 만드는 게 쿼츠 시계예요. 기계식 시계는 태엽이 푸는 힘으로 밸런스 휠을 왕복시켜 시간을 재는데, 이 왕복은 온도에 따라, 시계를 어떻게 놓느냐에 따라, 기름이 마르는 정도에 따라 조금씩 흔들려요. 수정의 진동은 그런 것에 훨씬 덜 흔들려요. 같은 값이면 비교가 안 될 만큼 정확하다는 뜻이에요.

이 아이디어를 처음 물건으로 만든 곳은 시계 회사가 아니었어요. 1927년 10월, 벨 전화연구소의 워런 매리슨과 J.W. 호턴이 수정 덩어리를 초당 5만 번 떨게 해서 시간을 세는 장치를 만들었어요. 방 안에 놓고 쓰는 실험실 장비였고, 손목에 찰 수 있는 물건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여기서 아주 흔한 혼동이 하나 생겨요. 쿼츠 시계와 쿼츠 손목시계는 다른 물건이에요. 세이코의 공식 서술에 따르면 1950년대 말까지도 방송국이 쓰던 쿼츠 시계는 큰 책장보다 컸어요. 정확한 시계를 만드는 것과, 그 정확함을 손목 위에 올리는 것은 완전히 다른 숙제였던 거예요. 두 사건 사이에는 40년이 넘는 거리가 있어요.

그동안 손목시계 쪽에서도 전기를 쓰려는 시도가 이어졌어요. 1957년 해밀턴이 '일렉트릭 500'을 내놓았어요. 쿼츠는 아니고, 전지로 밸런스 휠을 움직이는 방식이었어요. 1960년 10월에는 불로바가 '아큐트론'을 발매했어요. 트랜지스터 회로로 360Hz짜리 소리굽쇠를 떨게 하는 물건이었고, 월 오차 1분을 보증했어요. 하루로 치면 2초예요. 기계식의 한계를 전자식으로 처음 넘어선 대중 제품이었어요.

무엇이 '세계 최초의 전자식 손목시계'인지는 자료마다 갈려요. 해밀턴 일렉트릭을 꼽는 쪽도 있고 아큐트론을 꼽는 쪽도 있어요. 다툼이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시기의 분위기를 보여줘요. 여러 나라의 여러 회사가 같은 방향으로 동시에 밀고 있었거든요.

일본에서도 준비가 시작됐어요. 1959년 세이코가 '59A'라는 암호명으로 쿼츠 손목시계 개발에 착수했다고 전해져요. 프로젝트 이름과 착수 연도는 세이코 공식 자료가 아니라 나중에 정리된 서술이라 단정하기는 어려워요. 확실한 것은 그때 일본 회사가 책장만 한 물건을 손목만 하게 줄이는 일에 매달리고 있었다는 사실이에요.

여기서 기억할 것 1927년과 1969년 사이의 42년이 이 이야기의 진짜 출발선이에요. 발명은 미국에서 났고, 결승선은 다른 데 있었어요.

쿼츠 경연에서 먼저 우승한 쪽은 스위스였어요

스위스 시계의 뿌리는 아주 오래됐어요. FH의 설명에 따르면 종교개혁가 칼뱅이 장신구 착용을 금하자 제네바의 금세공인들이 시계로 업종을 옮겼고, 1601년에 시계공 길드가 세워졌어요. 업계가 즐겨 쓰는 기원 이야기라 그대로 믿기보다는 이렇게 전해진다는 정도로 두는 게 좋아요. 확실한 건 결과예요. 1790년 제네바는 이미 한 해 6만 개가 넘는 시계를 수출하고 있었어요.

스위스가 오래 앞설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생산 방식에 있었어요. 에타블리사주라고 부르는 분업이에요. 한 명의 장인이 시계 전체를 만드는 대신 부품마다 전문 공방이 나눠 만들고 마지막에 조립하는 구조죠. 산악지대에 흩어진 수많은 작은 공방이 하나의 산업을 이뤘어요. 이 구조는 나중에 이 이야기의 발목을 잡게 돼요.

정확도를 겨루는 공식 무대도 있었어요. 뇌샤텔과 제네바의 천문대가 여는 크로노미터 경연이에요. 어느 회사 시계가 하루에 몇 초 틀리는지를 재서 순위를 매기는 대회였고, 스위스 시계 산업의 자존심이자 기술 척도였어요.

그리고 여기서 통설이 깨져요. 스위스는 쿼츠를 몰라서 진 게 아니에요. 1960년대 초 뇌샤텔에 CEH라는 전자시계 연구소가 세워졌어요. 스위스 제조사 약 20곳이 공동으로 돈을 댄 컨소시엄이었고, 목표는 정확히 '쿼츠 손목시계'였어요. 설립 연도는 자료마다 조금씩 달라서 1960년대 초라고만 해 두는 편이 안전해요.

연구는 6년 걸렸어요. 결과물이 '베타1'이에요. 8,192Hz로 떠는 쿼츠 진동자와 자체 개발한 집적회로를 손목시계 크기에 담은 시제품이었어요. 완성 시점을 위키백과는 1966년으로, FH 공식 연혁은 1967년으로 적어요. 두 기록이 엇갈리니 1966년에서 1967년 사이라고 해 두죠.

그다음에 벌어진 일이 이 장의 핵심이에요. 1967년 뇌샤텔 천문대 경연에서 우승한 시계는 스위스 CEH의 쿼츠 시제품 '베타2'였어요. 하루 오차 0.003초였어요. 당시 최고급 기계식 크로노미터의 하루 오차가 3초에서 10초였으니 1,000배가 넘는 차이였죠. 같은 대회에서 세이코가 2위와 3위를 했어요.

이듬해 순서가 바뀌었어요. 1968년 제네바 천문대 경연에서 세이코가 58.19점으로 1위에 올라 종전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어요. 100년 넘게 스위스가 지키던 자리였어요. 두 대회를 나란히 놓고 보면 그림이 분명해져요. 스위스와 일본은 같은 무대에서, 같은 기술로, 1년 간격을 두고 서로를 앞질렀어요. 이때까지 승부는 아직 나지 않았어요.

여기서 기억할 것 '스위스는 쿼츠를 몰랐다'는 통설이 여기서 무너져요. 그러면 무엇 때문에 졌는지를 다시 물어야 해요.

1969년 12월 25일, 자동차 한 대 값의 손목시계

1969년은 기계식 시계 기술이 정점을 찍은 해이기도 해요. 1월 10일 제니트가 '엘 프리메로'를 발표했어요. 세계 최초의 고진동 자동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였고, 기계식으로 갈 수 있는 데까지 간 물건이었어요.

같은 해 12월 25일, 세이코가 도쿄에서 '쿼츠 아스트론 35SQ'를 발매했어요. 세계 최초의 상용 쿼츠 손목시계예요. 8,192Hz로 떠는 수정을 넣었고, 월 오차 ±5초를 보증했어요. 1년에 1분이라는 뜻이에요. 세이코는 이걸 기계식 시계의 약 100배 정확도라고 표현했어요.

값은 45만 엔이었어요. 그때 일본에서 자동차 한 대를 살 수 있는 돈이었어요. 18K 금장으로 만든 초도 물량 100개가 일주일 만에 다 팔렸어요. 정확한 시계를 가지려는 사람에게 자동차 한 대 값은 아직 비싼 값이 아니었던 거예요.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은 시계가 아니라 서류에서 나왔어요. 세이코는 쿼츠 관련 기술을 독점하지 않고 공개하기로 했어요. 회사 공식 서술이 그렇게 적고 있어요. 세계에서 제일 정확한 시계를 만들고, 그 만드는 법을 경쟁자들에게 열어 준 셈이에요.

결과는 몇 년 만에 나타났어요. 1970년 5월 6일 해밀턴이 '펄사'를 발표했어요. 바늘이 아예 없는 전자식 디지털 시계였어요. 1971년에는 지라르페리고가 32,768Hz로 떠는 무브먼트를 내놨어요. 이 숫자에는 이유가 있어요. 32,768은 2를 열다섯 번 곱한 값이라, 회로가 신호를 반으로 나누는 일만 열다섯 번 반복하면 정확히 1초가 나와요. 사람 귀에 안 들릴 만큼 높으면서 전지도 적게 먹고요. 오늘날 거의 모든 쿼츠 시계가 이 주파수를 써요.

1973년에는 시티즌이 첫 쿼츠 손목시계를 내놨어요. 1974년 11월에는 카시오가 '카시오트론'을 발매했어요. 카시오는 시계를 만들어 본 적이 없는 계산기 회사였어요. 계산기용 반도체 기술을 그대로 가져와 큰달과 작은달을 자동으로 넘기는 캘린더를 넣었어요. 시계를 만드는 데 시계공이 필요 없어진 순간이에요.

2004년 세이코 쿼츠 아스트론은 IEEE 마일스톤에 등재됐어요. 기술사에 남는 사건으로 공인된 거예요. 다만 세이코 자신은 이 개방의 대가를 곧 치르게 돼요. 문이 열린 시장에는 자기만 들어가는 게 아니니까요.

여기서 기억할 것 시장을 연 쪽과 그 시장에서 오래 돈을 번 쪽은 달라요. 이 어긋남이 뒤에서 또 한 번 나와요.

스위스가 만든 쿼츠 무브먼트 베타21은 두 해 동안 6,000개

스위스도 손을 놓고 있지 않았어요. 1970년 바젤 박람회에서 CEH가 개발한 쿼츠 무브먼트 '베타21'이 공개됐어요. 오메가, 롤렉스, 파텍필립, IWC 같은 이름들이 이 무브먼트를 나눠 썼어요. 자료마다 목록이 조금씩 달라서 십수 개 브랜드라고 해 두는 편이 정확해요.

문제는 개수였어요. 1970년부터 1971년까지 만들어진 베타21은 전부 합쳐 약 6,000개예요. 오메가가 이 무브먼트로 만든 '일렉트로쿼츠'의 18K 금장 모델은 영국에서 1,150파운드에 팔렸어요. 스위스는 쿼츠를 값싸고 흔한 물건이 아니라 고급 시계에 넣는 새 부품으로 다뤘어요. 같은 시기 일본은 이미 양산 체제로 갔고요.

그러니 '스위스가 쿼츠를 거부했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아요. 사실에 가까운 말은 작게 만들었다는 거예요. 못 만든 것도 아니고 버린 것도 아니고, 몇 천 개 규모의 고급품으로만 만든 거죠.

왜 그랬을까요. 앞에서 본 에타블리사주 구조를 떠올려 보세요. 부품마다 다른 공방이 만들고 브랜드마다 다른 조합으로 조립하는 방식이에요. 손으로 다듬는 부품이 수백 개씩 들어가는 물건에는 잘 맞는 구조예요. 그런데 쿼츠 시계는 정반대를 요구했어요. 똑같은 회로와 똑같은 전지와 똑같은 모듈을 어마어마한 수량으로 찍어 내는 일이었거든요. 니콜라스 하이에크는 훗날 스위스 시계 대기업 한 곳이 100개가 넘는 회사를 거느리고 각자 마케팅과 조립을 했다며, 미친 짓이었다고 말했어요.

역전이 언제 일어났는지는 딱 잘라 말하기 어려워요. 흔히 1978년에 쿼츠가 기계식을 앞질렀다고 인용되는데, 어느 시장에서 수량 기준인지 금액 기준인지가 분명하지 않아요. 스위스 안에서의 역전 시점을 1979년에서 1980년 사이로 적는 자료도 있어요. 어느 쪽이든 아스트론 발매로부터 10년 안쪽이었어요.

생산의 무대도 옮겨갔어요. 홍콩 제조사들은 1960년대부터 값싼 시계와 부품을 만들다가 1970년대에 쿼츠 생산에 들어갔어요. 같은 시기 스위스 시계 회사들 중에도 일부 공장을 홍콩으로 옮긴 곳이 있었어요. 개당 몇 달러짜리 시계의 세계가 이때 열린 거예요.

문을 연 쪽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었어요. 기술을 공개한 세이코 자신이 곧 홍콩과 중국의 초저가 쿼츠에 아래쪽 시장을 내줬거든요. 시장을 연 대가로 시장의 아래쪽을 잃은 셈이에요. 만드는 법이 공개되자, 그것을 제일 싸게 찍어 내는 쪽이 아래쪽을 가져갔거든요.

여기서 기억할 것 기술에서 진 게 아니라 규모에서 졌어요. 무엇을 만들 줄 아느냐보다 어떻게 만드느냐가 판을 갈랐어요.

은행이 시계 대기업의 청산을 검토하던 해

숫자가 무너지는 속도는 빨랐어요. FH 공식 페이지는 스위스 시계 산업 고용이 1970년 약 9만 명에서 1984년 3만 명대로 떨어졌다고 적어요. 열몇 해 사이에 셋 중 둘이 사라진 거예요.

이 숫자는 조심해서 다뤄야 해요. 자료마다 다르게 적히거든요. 위키백과의 '쿼츠 위기' 항목은 1970년부터 1988년까지 9만 명에서 2만 8천 명으로 줄었다고 하고, 다른 항목은 1960년대 중반 약 7만 명에서 1980년대 3만~3만 5천 명으로 안정됐다고 적어요. 기준 연도도 다르고, 무엇을 시계 산업으로 세느냐도 달라요. 방향은 모두 같지만 어느 자료의 어느 기간인지를 빼고 숫자만 옮기면 금세 틀린 문장이 돼요. 기업 수도 마찬가지예요. 위키백과 '쿼츠 위기' 항목은 1970년 1,600곳에서 1983년 600곳으로 줄었다고 적고, FH도 1970년 기업 수를 1,600곳으로 적어요. 다만 사용자협회의 인구조사에서는 1960년대 중반 사업체가 2,400곳 안팎으로 훨씬 많이 잡혀요. 무엇을 시계 기업으로 세느냐가 자료마다 다르거든요.

무너진 건 스위스만이 아니었어요. 1962년 미국에서 팔린 시계 세 개 중 하나가 타이멕스였어요. 그 회사는 일본 쿼츠의 공세를 맞고 1970년대에 인력을 3만 명에서 6천 명으로 줄였어요. 쿼츠 파동을 스위스 대 일본의 싸움으로만 그리면 미국이 통째로 빠져요.

개별 회사 안에서는 더 극적인 일도 벌어졌어요. 1975년 제니트 경영진이 기계식 크로노그래프를 접고 쿼츠로 가기로 하면서 엘 프리메로의 생산 설비를 폐기하라고 지시했어요. 여섯 해 전에 정점이라 불리던 그 무브먼트예요. 시계공 샤를 베르모가 공구와 도면을 공장 다락에 숨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요. 브랜드 서사로 널리 퍼진 이야기라 세부까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폐기 지시가 있었고 훗날 그 설비로 다시 만들게 됐다는 큰 줄기는 여러 자료가 함께 적고 있어요.

산업의 심장부도 멈췄어요. 1930년 오메가와 티소가 합쳐 SSIH가 됐고, 이듬해에는 무브먼트와 부품 공장들을 묶은 ASUAG가 세워졌어요. 두 거대 그룹이 스위스 시계 산업의 두 기둥이었어요. 1982년 ASUAG가 재정적으로 파산했어요. SSIH도 이미 지급불능 직전이었고요.

스위스 은행들은 두 회사를 정리하기로 마음먹고, 실사를 맡을 컨설턴트를 찾았어요. 그렇게 불려 온 사람이 니콜라스 하이에크였어요.

여기서 기억할 것 여기가 바닥이에요. 그리고 청산을 검토하러 온 사람이 다음 장의 주인공이 돼요.

오메가를 거느린 그룹 이름이 왜 스와치일까

회생의 씨앗은 하이에크가 오기 전부터 자라고 있었어요. 1978년 에른스트 톰케가 무브먼트 회사 ETA의 경영을 맡았어요. 그는 스위스 무브먼트 회사들끼리 벌이는 내부 경쟁을 끝내고 통합해야 산업이 산다고 주장했고, 1982년에는 에보슈 SA의 CEO가 됐어요.

톰케 밑에서 두 엔지니어가 이상한 시계를 설계했어요. 엘마 모크와 자크 뮐러예요. 이들이 만든 것은 디자인이라기보다 공정이었어요. 부품 수를 51개로 줄이고, 무브먼트를 따로 만들어 넣는 대신 케이스에 직접 조립해 자동화 라인에서 찍어 내는 구조였어요. 스위스가 200년 넘게 해 온 방식을 정확히 반대로 뒤집은 거예요.

1983년 3월 1일 취리히에서 첫 스와치가 발표됐어요. 값은 39.90에서 49.90 스위스프랑, 그해 가을에 50프랑으로 통일됐어요. 이름은 '두 번째 시계(second watch)'라는 뜻이었어요. 하나만 차는 물건이 아니라 옷처럼 바꿔 차는 물건이라는 제안이었죠. 정확함으로 겨루기를 포기하고 값과 재미로 겨루겠다는 선언이기도 했어요.

한편 하이에크는 청산 보고서 대신 다른 답을 내놨어요. 두 회사를 합치라는 권고였어요. 1983년 ASUAG와 SSIH가 합병했어요. 그리고 1985년, 하이에크가 이끄는 투자자 그룹이 합병 회사의 지분 과반을 직접 인수하고 그가 이사회 의장에 올랐어요. 청산을 맡기려던 사람이 회사를 사 버린 거예요. 인수 금액은 공식적으로 공개된 적이 없어요.

회사 이름은 1986년 SMH로, 1998년에는 스와치 그룹으로 바뀌었어요.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자리에 있었어요. 합병 회사의 초대 CEO는 톰케였고 1984년부터 1991년까지 경영을 맡았어요. 하이에크는 이사회 의장이자 최대 주주로 방향을 정했고, 톰케가 떠난 뒤에야 경영까지 겸하게 돼요. 스와치를 만든 조직은 톰케 쪽이었고, 회사를 사서 방향을 정한 쪽은 하이에크였어요. 여기서 이 이야기에서 가장 이상한 대목이 나와요. 오메가와 브레게를 거느린 그룹 전체의 간판이 값싼 플라스틱 시계의 이름이 됐어요. 2025년 이 그룹의 연결 매출은 62억 8천만 프랑, 임직원은 31,800명이에요.

같은 시기 일본은 정반대 방향으로 갔어요. 1983년 4월 카시오가 'G-SHOCK DW-5000C'를 내놨어요. 우레탄 범퍼와 5중 완충 구조, 200m 방수로 시계는 약하다는 전제 자체를 뒤집은 물건이에요. 스위스가 값싸고 가벼운 패션 쪽으로 몸을 틀 때, 일본은 험한 데서도 안 깨지는 쪽으로 갔어요. 1989년 6월에 나온 카시오 F-91W는 누적 1억 개가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하이에크는 2010년 6월 28일 비엘의 스와치 그룹 본사에서 세상을 떠났어요.

여기서 기억할 것 구조조정은 값을 올려서가 아니라 값을 내려서 시작됐어요. 명품으로 되살아나는 건 그다음 이야기예요.

개수는 반토막인데 돈은 2.6배가 된 산업

다락에 숨겨졌다던 그 설비가 돌아왔어요. 1988년 롤렉스가 데이토나에 제니트의 엘 프리메로 무브먼트를 얹기 시작했어요. 이 공급 관계는 2000년까지 이어졌어요. 폐기 지시를 받았던 기계식 무브먼트가 십여 년 만에 럭셔리 시계의 심장이 된 거예요.

이건 우연한 복고가 아니라 종목 변경이었어요. 쿼츠가 정확함을 개당 몇 달러에 만들어 버리자, 기계식 시계는 정확도 경쟁에서 이길 방법이 없어졌어요. 그래서 아예 다른 값어치로 옮겨 갔어요. 손으로 만든 것, 적게 만든 것, 오래된 것, 그리고 차고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 주는 것으로요. 정확함을 파는 물건에서 이야기를 파는 물건이 된 거예요.

숫자로 보면 이 전환이 또렷해요. 2000년 스위스는 손목시계 2,965만 6천 개를 수출해 92억 7천만 프랑을 벌었어요. 2025년에는 1,459만 4천 개를 수출해 244억 프랑을 벌었어요. 개수는 반토막인데 금액은 2.6배예요. 산업이 회복한 게 아니라 다른 산업이 된 거죠.

기계식만 따로 떼어 보면 더 이상해요. 2000년 스위스가 수출한 기계식 손목시계는 247만 6천 개였어요. 2025년에는 520만 8천 개예요. 쿼츠에 밀려 죽었다던 기계식이 그 뒤에 개수로도 두 배 넘게 늘었어요.

그렇다면 스위스가 쿼츠를 버린 걸까요. 그렇지 않아요. 2025년 스위스가 수출한 손목시계 1,459만 4천 개 가운데 938만 6천 개가 쿼츠예요. 개수로는 쿼츠가 64%로 여전히 다수예요. 다만 그 938만 개가 벌어들인 돈은 35억 프랑이고, 520만 개뿐인 기계식이 209억 프랑을 가져가요. 금액으로는 기계식이 86%인 거예요. 수량으로 보느냐 금액으로 보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문장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2023년에는 스위스 시계 수출액이 사상 최고인 267억 프랑을 기록했어요. 다만 이 숫자는 시계와 무브먼트와 부품을 모두 합친 시계산업 총액이라, 손목시계만 따진 244억 프랑과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 안 돼요. 같은 이름의 통계라도 담는 범위가 다르거든요.

이 판의 꼭대기에는 롤렉스가 있어요. 다만 이 회사는 비상장 재단 소유라 생산량도 매출도 공개하지 않아요. 시중에 도는 숫자는 전부 바깥에서 추정한 값이에요. 모건스탠리와 뤽스컨설트의 추정으로는 2024년 생산량이 117만 6천 개, 럭셔리 시계 시장 점유율이 32%, 매출이 105억 프랑이에요. 추정치라는 꼬리표를 떼면 안 되는 숫자예요.

여기서 기억할 것 무너진 쪽이 같은 종목에서 이긴 게 아니에요. 아예 다른 종목으로 갈아탔고, 그래서 개수와 금액이 갈라졌어요.

스마트워치는 누구의 자리를 빼앗았을까

2015년 4월 24일 애플워치가 나왔을 때, 1970년대가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손목 위의 경쟁자가 또 전자제품 회사에서 나왔으니까요. 그런데 10년쯤 지나 나온 숫자들은 조금 다른 그림을 그려요.

2024년 스위스 시계 수출은 금액으로 약 3%, 수량으로 10% 줄었어요. 약 150만 개가 덜 팔린 거예요. 그런데 감소가 골고루 일어나지 않았어요. 수출가 3,000프랑 미만 구간의 수출액이 16% 줄어드는 동안, 고가 구간은 오히려 금액이 1% 늘었어요. 스마트워치와 자리가 겹치는 쪽은 기계식 명품이 아니라 값싼 쿼츠 시계예요.

업계 스스로도 그렇게 보고 있어요. 딜로이트가 2025년에 스위스 시계업계 임원들을 조사했더니 68%가 스마트워치의 영향을 '중립적'이라고 답했어요. 업계 자체 인식 조사라는 점은 감안해야 하지만, 1970년대의 공포와는 온도가 확실히 달라요.

다만 소비자 쪽 신호는 편하지 않아요. 같은 조사에서 '전통 시계를 찬다'는 응답 비율이 2020년 46%에서 2025년 26%로 떨어졌어요. 13개 시장에서 6,500명을 온라인으로 물은 결과라 실제 착용률이 아니라 응답률이지만, 방향은 분명해요. 손목의 기본값이 바뀌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재미있는 건 스마트워치 쪽도 안정된 판이 아니라는 거예요. 카운터포인트 리서치의 추정으로 2026년 2분기 세계 스마트워치 출하량은 1년 전보다 4% 줄었고, 애플이 점유율 20%로 화웨이(22%)에 1위를 내줬어요. 애플은 워치 판매 대수를 공개하지 않아서 이 분야의 모든 점유율은 조사기관 추정이에요.

숫자 두 개를 나란히 놓으면 업계가 지금 어디를 보고 있는지가 보여요. 스마트워치의 영향은 '중립'이라고 답한 임원이 68%인데, 최대 시장인 미국에는 관세가 걸려 있거든요. 2025년 4월 31%로 발표됐던 미국의 스위스산 제품 관세가 그해 8월 7일부터 39%로 발효됐어요. 미국은 2021년 중국을 제치고 스위스 시계의 최대 시장이 된 나라예요. 2024년 대미 수출은 44억 프랑으로 전체의 16.8%였어요.

그래서 최근 통계는 오르내림이 심해요. 2025년 스위스 시계 수출은 256억 프랑으로 1.7% 줄어 두 해 연속 감소했어요. 그러다 2026년 7월에는 한 달 수출이 26억 프랑으로 9.6% 늘며 일곱 달 누적이 플러스로 돌아섰고요. 월간 통계는 매달 갱신되니 이 문장도 곧 낡아요. 어느 시점 기준인지가 늘 따라붙어야 하는 이유예요.

여기서 기억할 것 지금 뉴스에 나오는 시계 기사의 정체예요. 숫자만 놓고 보면 스마트워치보다 관세가, 명품보다 값싼 구간이 흔들리고 있어요.

다음 판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앞일을 맞힐 필요는 없어요. 대신 이 이야기가 알려 준 규칙에 비춰, 어디를 보고 있으면 판이 움직이는 걸 먼저 알아챌 수 있는지만 정리해 볼게요.

첫째, 값싼 구간이에요. 스위스가 수출하는 손목시계는 개수로 따지면 64%가 여전히 쿼츠예요. 그리고 스마트워치와 자리가 겹치는 쪽은 기계식 명품이 아니라 바로 이 저가 쿼츠 쪽이에요. 수출가 3,000프랑 미만 구간이 계속 줄어들면 개수와 금액의 격차는 더 벌어져요. 스위스 시계 산업이 점점 더 작고 비싼 산업이 된다는 뜻이에요.

둘째, 관세예요. 2025년 8월 기준으로 미국에 매겨진 세율은 39%인데, 미국은 스위스 시계의 최대 시장이에요. 무역 협상 결과가 곧바로 다음 달 수출 통계에 나타나요. 지금 시계 뉴스에서 가장 자주 바뀌는 숫자가 이거예요.

셋째, 보이지 않는 하부구조예요. 시티즌 계열의 미요타는 연간 약 1억 개의 무브먼트를 만든다고 알려져 있고, 그중 90% 이상이 쿼츠예요. 2023년 자료 기준인데, 이 한 회사의 부품 생산량이 스위스 전체 손목시계 수출 수량의 일곱 배쯤 돼요. 카시오는 2026 회계연도에 시계 부문에서 1,849억 6,600만 엔을 벌어 회사 전체 매출의 약 67%를 채웠어요. 무너뜨린 쪽은 사라진 게 아니라 산업의 바닥에 깔려 있어요.

넷째, 사람이에요. 스위스 시계·마이크로테크 산업 종사자는 2025년 9월 30일 기준 64,807명, 사업체는 685곳이었어요. 전년의 65,642명보다 줄어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어요. 다만 이 집계는 시계만이 아니라 의료기기와 자동차 부품 같은 정밀가공까지 포함해요. 1970년의 9만 명과는 잣대가 아예 다르니 나란히 놓고 빼기를 하면 안 돼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요. 이 이야기에서 밀려난 쪽은 못 만들어서 밀려난 게 아니었어요. 스위스는 쿼츠 경연에서 먼저 우승했고, 자기 손으로 상용 무브먼트까지 내놨어요. 다만 그 무브먼트 베타21을 두 해 동안 6,000개, 고급 브랜드용으로만 만들었고, 몇 백만 개 단위로 찍어 내는 쪽에 시장을 내줬어요. 그리고 무너진 뒤에는 돈을 버는 자리를 정확함에서 이야기 쪽으로 옮겼어요. 쿼츠 시계를 그만 만든 게 아니라, 개수로는 여전히 쿼츠를 더 많이 내보내면서 돈은 기계식에서 벌게 된 거예요. 그래서 개수로는 40분의 1인 채로 수출 금액에서 1위가 됐어요.

반대편도 잊으면 안 돼요. 이긴 쪽이 가져간 것은 개당 몇 달러의 세계였어요. 정확함을 모두의 것으로 만든 대가로, 정확함 자체에는 더 이상 값이 붙지 않게 됐거든요. 그쪽에서 돈을 벌려면 앞에서 본 미요타처럼 개당 몇 달러짜리를 억 단위로 만드는 수밖에 없어졌고요.

여기서 기억할 것 예측이 아니라 관전법이에요. 값싼 구간, 관세, 부품 하부구조, 그리고 고용 통계의 잣대 — 네 곳만 보면 돼요.

흔한 오해

오해

세이코가 세계 최초의 쿼츠 시계를 만들었다.

사실

세이코가 만든 것은 세계 최초의 상용 쿼츠 '손목시계'예요(1969년 12월 25일, 아스트론 35SQ). 쿼츠 시계 자체는 1927년 10월 벨 전화연구소의 워런 매리슨과 J.W. 호턴이 만든 실험실 장비가 처음이에요. 두 사건 사이에는 42년이 있고, 그 사이 대부분의 시간이 '책장만 한 물건을 손목만 하게 줄이는' 데 쓰였어요.

오해

스위스는 쿼츠를 몰랐거나, 알고도 거부했다.

사실

스위스 제조사 약 20곳이 공동 출자한 연구소 CEH가 쿼츠 손목시계를 개발했고, 1967년 뇌샤텔 천문대 경연에서는 그 시제품이 하루 오차 0.003초로 우승했어요. 1970년에는 베타21을 상용화했고요. 다만 1970~71년 생산량이 약 6,000개였고 대부분 고가 브랜드용이었어요. '거부했다'보다 '작게 만들었다'가 사실에 가까워요.

오해

스위스가 세계 시계의 대부분을 만든다.

사실

정반대예요. 2025년 스위스의 손목시계 수출 수량은 1,460만 개로 중국(5억 8,950만 개)의 약 40분의 1이에요. 세계 생산 수량에서 스위스의 몫은 2% 정도로 이야기돼요. 대신 개당 평균 수출가가 스위스 2,018달러, 중국 4달러여서 금액으로는 스위스가 308억 달러로 1위예요.

오해

애플이 스위스 시계 산업 전체보다 시계를 많이 판다.

사실

널리 인용되지만 확인하기 어려운 비교예요. 애플은 워치의 판매 대수를 공식 발표하지 않아서 시중의 모든 수치가 조사기관 추정치예요. 비교 대상도 어긋나요. '스위스 시계 산업'의 숫자는 스위스 세관을 통과한 수출 수량(2025년 1,460만 개)이라, 세계 시계 생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산 수억 개가 아예 빠져 있거든요.

그래서 한마디로

쿼츠 시계는 1927년 미국에서 실험실 장비로 태어났고, 그것을 손목에 올린 건 42년 뒤 일본의 세이코였어요. 스위스는 쿼츠를 몰라서 진 게 아니라 자기가 개발한 쿼츠 무브먼트 베타21을 두 해 동안 6,000개 규모의 고급품으로만 만들다 규모에서 밀렸고, 고용이 셋 중 둘씩 사라지는 붕괴를 겪었어요. 살아난 계기는 명품이 아니라 부품 51개짜리 값싼 플라스틱 시계와 두 대기업의 합병이었고, 그 뒤 기계식 시계는 정확함이 아니라 이야기를 파는 물건으로 종목을 갈아탔어요. 그 결과가 지금의 어긋난 통계예요. 스위스는 개수로 세계의 2%쯤을 만들면서 수출 금액으로는 세계 1위예요.

참고 자료

본문의 연도와 숫자는 아래 자료를 근거로 씁니다. 틀린 곳을 찾으시면 알려주세요.

  1. World Watchmaking Industry in 2025 스위스 시계산업연맹(FH) 연차 보고서 2025년 수출 총액 256억 프랑, 손목시계 244억 프랑·1,460만 개, 수량·금액 상위국, 평균 수출가 스위스 2,018달러·중국 4달러, '모든 수치는 수출가이며 소매가가 아님' 명시
  2. 스위스 시계 수출 통계 — 전자식·기계식 시계열 (2000년 이후) 스위스 시계산업연맹(FH) 통계표 2000년 2,965만 6천 개·92억 7,650만 프랑, 2025년 1,459만 4천 개·244억 810만 프랑, 2025년 전자식 938만 6천 개·35억 프랑 / 기계식 520만 8천 개·209억 프랑
  3. Statistics — Swiss watch industry exports 스위스 시계산업연맹(FH) 통계 포털 2026년 7월 수출 26억 프랑(+9.6%)과 7개월 누적 플러스 전환, 'FH 통계는 수출 수치이며 최종 소비자 판매가 아니다'라는 방법론 고지
  4. The Swiss watch industry today 스위스 시계산업연맹(FH) 1970년 고용 약 9만 명과 기업 1,600곳, 1984년 3만 명대 저점, 쿼츠 등장으로 인력이 3분의 2 줄었다는 서술
  5. Swiss watchmaking — from its origins to the present day 스위스 시계산업연맹(FH) 칼뱅의 장신구 금지와 금세공인의 전업, 1601년 제네바 시계공 길드, 1790년 연 6만 개 수출, 에타블리사주 분업, 베타21에 대한 FH 측 연혁(1967년)
  6. 스위스 시계·마이크로테크 산업 인력·기업 조사 (2025년 9월 30일 기준) 스위스 시계산업 사용자협회(Convention patronale) 2025년 64,807명·685곳(전년 65,642명·682곳), 집계 대상이 시계와 마이크로테크 합계라는 정의, 1950년대 이후 장기 인력 그래프
  7. Quartz crisis 위키백과(영문) 1970년대 이전 스위스의 세계 시계 시장 점유율 50%, 1970년 5월 6일 해밀턴 펄사, 1971년 지라르페리고 칼리버 350, 1970~1983년 제조사 1,600곳→600곳, 1970~1988년 고용 9만→2만 8천, '1978년 쿼츠가 기계식을 추월'이라는 서술
  8. Swiss watchmaking industry 위키백과(영문) 1960년대 중반 약 7만 명 → 1980년대 3만~3만 5천 명, 스위스 내부의 기계식-전자식 역전 시점 1979~80년, 수량으로는 세계의 2%라는 서술
  9. Astron (wristwatch) 위키백과(영문) 1969년 12월 25일 발매, 45만 엔, 18K 금장 100개가 일주일 만에 판매, 월 오차 ±5초, 캘리버 35SQ
  10. Heritage — Quartz Astron 세이코 공식 사이트 1950년대 말 방송국용 쿼츠 시계가 큰 책장보다 컸다는 서술, '기계식의 100배 정확도', 2004년 IEEE 마일스톤, 기술을 공개해 전 세계가 쓸 수 있게 했다는 공식 서술
  11. Seiko 위키백과(영문) 1881년 창업, 1967년 뇌샤텔 천문대 경연 2·3위, 1968년 제네바 천문대 경연 1위(58.19점), 특허를 독점하지 않기로 한 결정
  12. History of watches 위키백과(영문) 1959년 세이코가 착수한 '59A' 프로젝트, 1964년 도쿄 올림픽의 휴대형 쿼츠 시제품, 1980년대 쿼츠 생산의 극동 이전
  13. Quartz clock 위키백과(영문) 1927년 10월 벨 전화연구소 매리슨·호턴의 최초 쿼츠 시계(초당 5만 회), 32,768Hz가 표준이 된 이유, 아스트론의 8,192Hz와 정확도
  14. Omega Electroquartz — 베타1·베타21 위키백과(영문) 뇌샤텔 CEH에 스위스 제조사 20곳 공동 참여, 6년 연구 끝의 베타1(8,192Hz), 1967년 베타2의 하루 오차 0.003초 우승, 1970~71년 베타21 약 6,000개, 오메가 일렉트로쿼츠 18K 금장 1,150파운드
  15. Accutron 위키백과(영문) 1960년 10월 발매, 소리굽쇠 360Hz, 월 오차 1분 보증, 1957년 해밀턴 일렉트릭에 이은 '두 번째 전자식 시계'라는 서술
  16. Swatch 위키백과(영문) 1983년 3월 1일 취리히 첫 컬렉션, 39.90~49.90프랑(그해 가을 50프랑 통일), 부품 51개, 톰케·모크·뮐러의 개발, 'second watch'라는 이름의 유래
  17. Swatch Group 위키백과(영문) 1930년 SSIH·1931년 ASUAG 설립, 1982년 ASUAG 재정 파탄, 1983년 합병, 1985년 하이에크 그룹의 과반 인수, 1986년 SMH·1998년 스와치 그룹 개명
  18. Swatch Group History / The Founder 스와치 그룹 공식 사이트 '하이에크 스터디'의 합병 권고와 하이에크 풀의 과반 지분 취득, 1985년 CEO 취임, 2025년 그룹 순매출 62.80억 프랑·임직원 31,800명
  19. Nicolas Hayek 위키백과(영문) 2010년 6월 28일 비엘 본사에서 사망, 스위스 은행들의 ASUAG·SSIH 청산 실사 의뢰, '한 회사가 100개 넘는 회사를 거느렸다'는 발언
  20. Ernst Thomke 위키백과(영문) 1978년 ETA SA 경영 인수와 무브먼트 회사 간 내부 경쟁 종식 주장, 1982년 에보슈 SA CEO, SMH 초대 CEO
  21. Timex Group USA 위키백과(영문) 1962년 '미국에서 팔린 시계 세 개 중 하나가 타이멕스', 일본 쿼츠 공세 이후 1970년대 인력 3만 명 → 6천 명 감축
  22. Zenith (watchmaker) 위키백과(영문) 1969년 1월 10일 엘 프리메로 발표, 1975년 설비 폐기 지시와 샤를 베르모의 다락 은닉 이야기, 롤렉스 데이토나의 1988~2000년 채택
  23. Rolex 위키백과(영문) 2024년 생산 117만 6천 개·매출 105억 프랑·럭셔리 시계 시장 점유율 32% — 모두 모건스탠리·뤽스컨설트의 외부 추정치
  24. Swiss Watch Industry Study 2025 — Time under pressure 딜로이트 스위스 2023년 수출 최고치 267억 프랑, 2024년 금액 -3%·수량 -10%·3,000프랑 미만 구간 -16%·고가 구간 +1%, 2025년 8월 7일 미국 관세 39% 발효, 2024년 대미 수출 44억 프랑(16.8%), 전통 시계 착용 응답 46%→26%, 임원 68%가 스마트워치 영향을 '중립'으로 평가
  25. Casio Chronology — Casiotron / G-SHOCK 카시오 공식 사이트 1974년 11월 카시오트론 QW02, 1983년 4월 G-SHOCK DW-5000C(5중 완충, 200m 방수)
  26. Casio 위키백과(영문) 2026 회계연도 시계 부문 매출 1,849억 6,600만 엔으로 연결 매출의 약 67%
  27. Citizen Watch 위키백과(영문) 1973년 첫 쿼츠 손목시계, 1959년 나가노현 미요타 부품 공장, 2023년 자료 기준 연간 약 1억 개 무브먼트 생산(90% 이상 쿼츠)
  28. Casio F-91W 위키백과(영문) 1989년 6월 출시, 누적 생산 1억 개라는 서술(위키백과에도 출처 필요 표시가 붙어 있음)
  29. Apple Watch 위키백과(영문) 2015년 4월 24일 출시, 애플이 판매 대수를 일관되게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
  30. Global Smartwatch Shipments Market Share (2026년 2분기) 카운터포인트 리서치 2026년 2분기 출하량 전년 대비 -4%, 애플 20%·화웨이 22%, 절대 출하 대수는 비공개
  31. Manufacturing in Hong Kong 위키백과(영문) 1960년대 홍콩의 값싼 시계·부품 생산, 1970년대 쿼츠 생산 개시, 같은 시기 스위스 회사들의 일부 공장 이전
  32. CEH and the Beta 21: The History of the First Swiss Quartz Watch Grail Watch (시계 전문 자료실), 2020년 6월 15일 베타21 총 생산량 6,000개와 3개소 분업 생산(회로 CEH 뇌샤텔, 진동 모터 오메가, 수정진동자·기계부품 에보슈 SA). 1970년 4월 10일 공개
  33. Prix Gaïa 2013 — Ernst Thomke (기업가 부문) Watchonista (시계 전문 매체) 톰케가 SMH 초대 CEO(1984~1991), 하이에크는 이사회 의장. 톰케가 1991년 떠난 뒤 하이에크가 유일한 중심이 됨
제작 2026-09-05 갱신 2026-09-05 검증 2026-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