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츠 한 장을 뒤집어 보면 솔기가 열 몇 군데예요. 어깨선, 옆선, 소매, 소맷부리, 깃, 앞단, 주머니, 밑단. 여기에 천을 마르는 일과 시침하는 일과 단춧구멍을 내는 일과 다림질이 붙습니다.
한 세기 반 전이라면 이 일을 한 사람이 다 했어요. 재단사는 치수를 재고 본을 놓고 마르고 꿰매고 다리는 일을 다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영국 상원의 조사위원회가 1890년에 받아 적은 말이 이랬어요. 제대로 훈련받은 재단사는 옷 한 벌 전체든 그 일부든 만들 수 있었고, 자기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았다고요.
지금은 아닙니다. 미국 노동부가 1898년에 셔츠 12다스를 단위로 옛 방식과 기계 방식을 나란히 조사했어요. 네 단위 모두 옛 방식 쪽은 사람이 한 명이었고, 기계 방식 쪽은 열네 명, 스물두 명, 서른여덟 명, 그리고 이백서른 명이었어요.
이 이야기가 따라가는 것은 재봉틀이 얼마나 빨랐느냐가 아니에요. 옷 한 벌이 몇 사람의 손을 지나가게 됐는지, 그리고 그 사람들이 각자 무엇을 알게 됐는지예요.
한눈에 보는 연표
한 사람이 다 만들던 때
- 1830 티모니에가 프랑스 특허 — 현장에서 돌아간 첫 기계
- 1841 파리 작업장의 재봉틀 80대가 재단사들 손에 부서짐
- 1846 하우의 미국 특허 — 제목은 「재봉틀의 개량」
- 1851 싱어의 미국 특허 — 이 제목도 「재봉틀의 개량」
기계가 들어오다
- 1861 재봉틀 회사가 스스로 낸 손 대 기계 비교 실험표
쪼개지다
- 1876 뉴욕의 기성복 코트 제작에 과업제가 들어옴
- 1890 영국 상원이 스물다섯 갈래 분업 증언을 기록
- 1898 미 노동부 조사 — 셔츠 12다스에 손 1명, 기계 38명
- 1900 미 인구총조사 — 코트 한 벌에 백 명 넘게 붙는 공장
- 1911 미 노동국 조사 — 코트가 서른 사람의 손을 지나감
지금
- 2017 국제노동기구 — 의류 공장 인력의 67%가 봉제 공정
- 2023 한국 국가승인통계가 「시다」를 기타 항목에 둠
- 2025 서울시 조사 — 봉제노동자는 보통 1~2개 공정을 맡음
옷 한 벌이 한 사람의 머릿속에 다 들어 있던 때
재단사가 아는 일의 목록이 얼마나 길었는지는 미국 노동부의 1898년 조사에 남아 있어요. 이 조사는 같은 물건을 옛 방식과 기계 방식으로 만들 때의 공정을 순서대로 다 적었거든요. 남성복 한 벌의 공정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천을 줄여 다듬고, 천을 말고, 본을 놓아 표시하고, 마르고, 부속을 묶고, 솔기를 꿰매고, 단춧구멍과 단추 자리를 표시하고, 단춧구멍을 뚫고, 그 구멍을 감치고, 안감을 감쳐 마무리하고, 다리고, 단추를 달고, 검사하고 솔질합니다. 열세 가지예요.
이 사슬을 한 사람이 다 쥐고 있었다는 것이 이 편의 출발점입니다. 같은 조사에서 셔츠 12다스를 옛 방식으로 만든 자료를 보면, 보고서는 「손으로 만든 셔츠를 생산할 때는 여자 한 사람이 각 단위의 일을 다 했다」고 적었어요. 남성복 저가품 네 단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자 한 사람이 옷 한 벌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여러 공정을 혼자 다 했다고요. 그 일을 배우는 데는 오래 걸렸어요. 영국 상원 위원회는 재단 일에서 도제 제도가 무너지는 것을 여러 증인이 걱정했다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재봉틀을 누가 발명했나」는 여기서 답하지 않을게요. 축이 여럿이라 하나로 말할 수가 없거든요. 널리 알려진 두 미국 특허는 제목이 둘 다 「재봉틀의 개량」입니다. 1846년 하우의 4,750호도, 1851년 싱어의 8,294호도요. 둘 다 재봉틀 자체를 발명했다고 주장하지 않고 각각 다섯 개와 세 개의 장치를 청구해요. 실제 생산 현장에서 돌아간 첫 기계는 1830년에 프랑스 특허를 받은 티모니에의 것이었어요. 스미스소니언 기록으로는 1841년에 그가 파리의 한 작업장에서 기계 80대로 군복을 꿰매고 있을 때, 발명이 생계를 빼앗을 것을 두려워한 재단사 무리가 들어와 기계를 부쉈습니다. 기계를 부순 일이 이 이야기의 시작 쪽에 놓여 있는 셈이에요. 1860년의 한 신문 기사는 미국 특허 기록에서 재봉 관련 특허를 처음 찾을 수 있는 해를 1842년으로 적었습니다. 스미스소니언의 연구자는 1968년에 이렇게 썼어요. 실용적인 재봉틀은 한 사람의 천재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한 세기에 걸친 시도와 실패와 부분적 성공이 쌓인 결과라고요.
여기서 기억할 것 이 편이 세는 것은 기계의 성능이 아니에요. 옷 한 벌의 공정 열세 가지가 몇 사람에게 나뉘어 있었는지예요.
기계가 들어오자, 먼저 쪼개진 것은 조가 되었어요
미국 인구총조사국이 1900년에 남긴 의류편에 이 과정이 산업 자신의 말로 적혀 있어요. 재봉틀이 널리 쓰이게 된 뒤 기성복은 주로 저니맨 재단사들이 만들었는데, 총조사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때는 재단사 한 사람 한 사람이 숙련공이었고, 옷 한 벌 전체를 만들었다.」
다음 단계는 집이었어요. 독일계 이민자들이 기성복 제작에 들어오면서 옷 만드는 일에 분업을 들여왔는데, 그 분업의 무대가 각자의 집이었습니다. 아버지가 기계 일을 하고 어머니와 아이들이 시침과 마무리와 단춧구멍을 맡았어요. 옷 한 벌이 처음으로 여러 사람의 손을 지나가기 시작한 자리가 공장이 아니라 살림집이었다는 뜻이에요.
그다음이 1876년 무렵부터 뉴욕에 자리 잡은 「과업제」입니다. 총조사의 문장은 단호해요. 「이 제도의 도입은 기성복 산업을 뒤집었다. 일하는 사람이 숙련공일 필요가 더는 없어졌고, 저니맨 재단사는 이 부문에서 밀려났다.」 다만 여기에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이 제도는 코트를 만드는 데에만 적용됐다.」 바지와 조끼는 아직 아니었어요. 쪼개짐은 옷 종류마다 다른 속도로 왔습니다.
과업제의 조는 세 사람이었습니다. 기계 일을 다 하는 조작자, 안팎을 맞춰 붙이고 시접을 다리는 시침공, 박음질할 가장자리를 잡고 소매둘레를 시치는 마무리공. 이 조 바깥에 다림질공이 있고, 단추를 달고 단춧구멍을 내는 여성이 한 사람 있었어요. 다섯입니다. 총조사가 적은 값은 이랬어요. 과업제가 시작될 무렵 저니맨 재단사는 코트 한 벌을 혼자 다 만들고 2달러 50센트에서 3달러를 받았는데, 과업 작업장에서는 같은 코트를 다섯 사람이 1달러 50센트에서 2달러에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기억할 것 쪼개짐은 공장에서 시작되지 않았어요. 살림집의 가족 분업에서 시작해 세 사람 한 조로 옮겨 갔습니다.
값을 매기는 단위가 옷 한 벌에서 하루치 과업으로 옮겨 갔어요
쪼개진 것이 일만이 아니었어요. 값을 매기는 단위도 함께 바뀌었습니다. 재단사는 코트 한 벌에 얼마를 받았어요. 과업제의 조는 하루치 과업에 얼마를 받았고요. 이 차이가 그다음 수십 년의 내용이 됩니다.
1900년 인구총조사의 서술이 구체적이에요. 과업제가 처음 시작됐을 때 오버코트 한 과업은 주당 50벌쯤이었고, 조작자가 18달러, 시침공이 16달러, 마무리공이 11달러, 다림질공이 12달러를 받았습니다. 단추와 단춧구멍을 맡은 여성은 주급으로 4달러 50센트쯤을 받았고요. 그런데 경기가 나빠지고 일손이 넘칠 때 제조업자가 도급업자에게 값을 낮추라고 하면, 도급업자는 그 사정을 일꾼들에게 전했고, 일꾼들은 임금이 깎이지 않도록 과업의 크기를 늘리는 데 동의했어요. 처음 하루 8벌이나 9벌이던 과업이 20벌까지 올라갔습니다.
총조사가 그다음에 적은 문장이 이 챕터의 전부예요. 「일꾼들은 과업이 여덟 벌이든 스무 벌이든 늘 같은 값을 받았으므로, 자기 임금이 깎였다고 여기지 않았다.」 하루 열두 시간을 일해서는 하루치 과업을 끝낼 수 없게 되자 더 오래 일했고, 스무 시간을 일해도 끝나지 않아 서른 시간 넘게 걸리는 일이 잦아졌다고도 적혀 있어요.
1911년에 미국 노동국이 상원에 낸 조사는 이 구조를 한 줄로 정리했습니다. 과업제의 임금은 「이름은 일급이지만 실제로는 성과급」이라고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 일하는 쪽은 시간을 무릅쓰고 과업을 끝내려 하고, 쓰는 쪽은 과업을 키우고 싶어진다고 그 보고서는 적었어요. 값의 단위가 무엇이냐가 누구에게 유리한지를 정하는 자리였던 겁니다. 뒷날 큰 공장으로 넘어가면서 이 단위는 다시 주급으로 바뀌었어요.
여기서 기억할 것 옷 한 벌 값에서 하루치 과업 값으로. 단위가 바뀌면 같은 값이 같은 값이 아니게 됩니다.
「손으로 14시간, 기계로 1시간」이라는 표를 열어 봤어요
지금도 어디서나 인용되는 문장이 있어요. 손으로 셔츠 한 장을 만들려면 14시간이 걸리는데 재봉틀로는 1시간 16분이면 된다는 것. 재봉틀 회사의 연혁 페이지에도 이 문장이 실려 있고, 「그 시절 재봉틀 400대가 노동자 2,000명이 할 수 있는 어떤 일이든 해냈다」는 문장이 나란히 붙어 있습니다.
원 표를 찾아봤어요. 스미스소니언 연구자가 1861년 간행물을 밝히며 옮긴 표인데, 재봉틀 회사 휠러앤윌슨이 스스로 한 실험이었습니다. 표본은 손바느질꾼 네 명과 기계 조작자 네 명이었고, 그 평균값이었어요. 그리고 표의 제목이 「꿰맨 옷의 시간」입니다. 잰 것은 옷을 만든 시간이 아니라 꿰맨 시간이에요. 마르고 시침하고 단춧구멍을 내고 다리는 일은 들어 있지 않습니다. 한 해 앞선 1860년 1월 7일자 신문 기사의 문장도 같은 모양이었어요. 「신사 셔츠에 하는 바느질은 일급 재봉틀로 한 시간이면 넉넉히 끝나는데, 손으로 같은 일을 하려면 열네 시간이 든다.」 만든 시간이 아니라 「하는 바느질」이었어요. 400대와 2,000명이라는 숫자의 원 출처는 더 뜻밖입니다. 발명자에게 특허 기간을 더 주자고 주장하는 변론에 실린 공장주 자신의 진술이었어요.
그러면 정부가 재본 값은 어떨까요. 미국 노동부의 1898년 조사가 셔츠 12다스를 단위로 쟀는데, 어느 단위는 720시간이 83시간 24분으로 줄어 아홉 배였고 다른 단위는 손으로 1,176시간이던 것이 기계로 168시간이 되어 일곱 배였고요. 열네 배는 나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 조사도 흔들립니다. 그리고 흔들리는 자리를 조사 자신이 적어 두었어요. 보고서 서문은 손 방식 자료를 얻기가 훨씬 어려웠다고 하면서, 「오래전에 현역에서 물러난 고용주나 일꾼들을 찾아다니며 필요한 사실을 끌어내야 했다」고 적었습니다. 손 쪽 작업이 이뤄진 해도 단위마다 달라요. 기계 쪽은 다 1895년인데 손 쪽은 1894년, 1870년, 1853년입니다. 더 결정적인 것이 있어요. 같은 제품인 두 단위에서 비율이 갈렸습니다. 같은 무명 셔츠 12다스인데, 손 쪽은 둘 다 720시간이고 기계 쪽은 83시간 24분과 120시간 14.1분이었어요. 아홉 배와 여섯 배로 갈린 거예요. 다만 이 둘을 「공장만 다르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보고서를 보면 이 두 단위는 손 작업을 한 해가 1870년과 1894년으로 스물네 해 차이가 나요. 같은 제품인데도 무엇이 비율을 갈랐는지 이 조사만으로는 가릴 수가 없다는 뜻이에요.
그러면 이 조사에서 흔들리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 수예요. 그리고 보고서 서문이 공장 방식을 설명한 문장이 마침 그쪽을 가리킵니다. 속도를 말하지 않았어요. 「물건이 여러 손을 차례로 지나가는데, 일꾼 한 사람은 단 하나의 공정만 하고, 그것은 대개 그 물건을 완성하는 데 드는 일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이다.」
여기서 기억할 것 시간 비율은 누가 무엇을 어떤 해에 쟀느냐에 따라 흔들려요. 흔들리지 않는 것은 몇 사람이 손을 댔느냐입니다.
코트 한 벌이 몇 사람의 손을 지나갔을까요
미국 노동국이 1911년에 상원에 낸 조사가 이 숫자를 작업장마다 세어 놓았어요. 조사원들은 코트를 만드는 두 가지 방식을 나란히 놓고 정의했습니다.
앞 챕터에서 본 과업제가 하나예요. 보고서는 과업제의 특징을 「몇 안 되는 숙련된 사람들을 쓰되 각자가 여러 공정의 묶음을 맡는 것」이라고 적었어요. 그래서 조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부문에 대한 전반적인 훈련과 두루 아는 지식을 갖춰야 한다고요. 여기서 코트 한 벌은 대여섯 사람의 손을 지나갑니다.
다른 하나가 「구역제」입니다. 보고서의 정의는 이랬어요. 「과업제의 정반대편에 구역제가 있다. 여기서는 일이 아주 잘게 나뉘어서, 어느 일꾼이든 한 가지 공정만 하도록 제한된다.」 이 방식은 적어도 90명에서 100명, 보통은 그 두세 배를 쓰는 작업장에서만 가능하다고 적혀 있어요. 규모가 있어야 성립하는 방식이었던 거예요. 실제로 한 도급 작업장을 조사한 대목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일은 높은 수준의 분업으로 이뤄진다. 코트 한 벌은 완성되기까지 서른 사람쯤의 손을 지나가는데, 과업 작업장에서는 대여섯 사람이다.」 그 작업장은 주당 코트 800벌쯤을 내놓았고, 도급업자는 구역제로 하면 과업제의 절반 비용으로 코트를 만들 수 있다고 보면서 주당 900벌은 나와야 성립한다고 말했어요.
제조업자가 자기 공장에서 직접 만드는 곳은 더 잘게 나뉘었습니다. 「어떤 작업장에서는 코트가 완성되기까지 예순 사람의 손을 지나간다」고 보고서는 적었어요. 옷 종류에 따라 달랐습니다. 조끼는 40명에서 50명을 지나가는 곳이 있는가 하면 일고여덟 명에게만 나누는 방식도 흔했고, 바지는 여섯 공정 이하로 나누는 것이 가장 흔하되 예순 공정까지 나눈 곳도 있었어요.
1900년 인구총조사도 같은 방향을 적었습니다. 「과업제에서 스무 사람을 쓰는 곳이라면 공장은 이백 사람을 쓸 것이다.」 그리고 코트 한 벌을 만드는 데 백 명 넘게 붙는 공장이 있다고요.
여기서 기억할 것 옷 한 벌이 지나가는 손의 수는 세는 법이 갈리지 않아요. 대여섯에서 서른으로, 서른에서 예순으로 늘었습니다.
한 동작만 아는 사람은 다른 옷의 같은 동작도 못 해요
여기가 이 편의 한가운데예요. 쪼개진 것이 일이 아니라 기술이라는 것.
1900년 미국 인구총조사의 문장이 이걸 한 줄로 말합니다. 「일꾼마다 맡은 일이 한정돼 있어 곧 능숙해지고 놀랄 만큼 빠르게 해내는데, 그와 동시에 그는 옷의 다른 부분은 만들지 못한다.」 앞 절과 뒷 절이 같은 문장 안에 있어요. 한 동작만 하니까 그 동작을 아주 잘하게 되고, 한 동작만 하니까 나머지를 못 하게 됩니다. 총조사는 이어서 이렇게 적었어요. 이 전문화는 일꾼이 짧은 기간에 일을 배울 수 있게 해 주는 한편, 그를 제조업자의 통제 아래 완전히 두게 된다고요. 옷 한 벌을 다 만드는 사람보다 옷의 작은 부분만 만드는 사람에 대해 제조업자가 더 독립적이기 때문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영국 상원 위원회가 1890년에 받아 적은 증언은 더 구체적이에요. 재단 일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작업반장 또는 재단공, 시침공, 기계공, 감침공, 단춧구멍공, 다림질공, 잡일꾼이 생겼는데, 한 증인은 스물다섯 갈래로 나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문장이 나와요. 「분업이 아주 잘게 이뤄져서, 코트를 다릴 줄 아는 사람이라고 반드시 조끼를 다릴 줄 아는 것은 아니고, 조끼 다림질공은 바지를 다릴 자격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같은 다림질인데도 옷 종류가 바뀌면 못 한다는 거예요.
직명 자체가 동작의 이름이 되기도 했습니다. 1900년 인구총조사가 칼라 공장을 서술하면서 적은 이름들이 그래요. 상표와 치수를 찍는 사람은 「스탬퍼」, 풀로 부위를 맞춰 놓는 사람은 「페이스터」, 위와 옆을 박는 사람은 「러너」, 뒤집는 사람은 「터너」, 마지막 박음질을 하는 사람은 「스티처」였어요. 그중 뒤집는 일은 어느 정도 숙련과 경험이 필요해서 공장 일이라기보다 대개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맡았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방향은 되돌아오지 않아요. 영국 상원 보고서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 일을 배우는 데 여러 해가 걸렸는데, 한 사람이 아주 잘게 나뉜 일부만 하게 된 지금은 짧은 시간에 배울 수 있게 됐다고요. 배우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아졌다는 말은, 배운 것의 범위가 좁아졌다는 말과 같은 말이에요.
여기서 기억할 것 한 동작을 아주 잘하게 되는 것과 나머지를 못 하게 되는 것은 같은 문장 안에 있어요.
그러면 바느질하는 사람이 줄었을까요
「기계가 사람을 대신했다」는 말이 이 대목에서 가장 흔하게 나옵니다. 그런데 원자료가 보여 주는 방향은 반대예요. 같은 옷에 손을 대는 사람의 수는 늘었습니다. 셔츠 12다스에 한 명이던 것이 열넷·스물둘·서른여덟·이백서른이 됐고, 코트 한 벌에 대여섯이던 것이 서른과 예순이 됐어요.
숫자가 줄어 보이는 자리가 하나 있긴 합니다. 미국 남성복 공장의 임금노동자가 1890년 144,926명에서 1900년 120,950명으로 줄었어요. 그런데 같은 기간 사업체 수는 4,867곳에서 5,731곳으로 오히려 늘었습니다. 인구총조사는 이 감소를 설명하면서 임금의 일부가 잡비 항목의 도급 일로 옮겨 간 탓이 있다고 적었어요. 그리고 같은 보고서의 첫머리에 이런 고백이 있습니다. 조사원들이 옷 만드는 일이 이뤄지는 많은 곳에서 정보를 얻지 못했는데, 그런 곳 대부분이 셋집과 살림집 뒤편의 작은 작업장이었다고요. 집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하는 몫은 몇 명인지 알아내는 것 자체가 실행 불가능했다고도 적혀 있어요. 그러니 이 두 숫자를 빼서 「일자리가 얼마 줄었다」를 계산하면 틀립니다. 줄어든 것은 사람이 아니라 세어진 사람이에요.
한 가지 더 놀라운 것이 있어요. 이 시기의 재봉틀은 대개 발로 밟는 기계였습니다. 1900년 미국 남성복 공장 5,731곳 가운데 동력을 쓴 곳은 1,519곳으로 26.5%였어요. 1890년에는 8.3%였고요. 총조사는 뉴욕에서는 가장 큰 공장에서만 동력이 들어왔고, 건물 하나가 통째로 의복 작업장인 곳에서도 기계를 돌리는 힘을 조작자 자신이 대는 경우가 있다고 적었습니다. 넷 중 셋은 동력 없이 돌아갔다는 뜻이에요. 쪼갠 것은 동력이 아니라 조직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다른 이야기들도 함께 있어요. 삯바느질이 집 밖의 일이었다가 가정용 재봉틀과 함께 다시 집으로 돌아온 이야기, 「재봉틀이 여성을 해방했다」를 두고 지금도 정리되지 않은 논쟁, 밀려난 저니맨 재단사들의 이야기. 셋 다 사실이고 셋 다 길게 쓸 만한 이야기인데, 이 편의 축은 그쪽이 아니라 한 사람이 아는 범위 쪽이에요.
여기서 기억할 것 일자리가 사라진 게 아니라 셈에서 빠졌어요. 그리고 그 일을 쪼갠 것은 동력이 아니라 조직이었습니다.
한국 — 재단사, 미싱사, 그리고 통계에 없는 자리
한국에서도 같은 나눔이 있고, 그 나눔이 지금 통계 문서에 어떻게 적혀 있는지를 볼 수 있어요.
국가승인통계인 「봉제업체 실태조사」의 부록에는 직종분류가 있습니다. 디자이너, 패턴사, 샘플사, 재단사, 미싱사(봉제사), 링킹사, 생산관리자가 각각 한 항목이에요. 그런데 「시다」는 독립 직종이 아닙니다. 「그 외 섬유관련 기능종사원」 항목의 설명에 「아이롱사(시제품 다림질), 검사요원, 보조(시다) 등」이라고 예시로만 들어 있어요. 반면 서울노동권익센터가 2025년에 낸 실태조사의 설문지는 재단사와 미싱사와 시다와 시아게를 나란히 선택지로 놓습니다. 같은 자리를 두 문서가 다르게 세는 거예요.
그 서울시 조사의 서술이 이 편의 축과 정확히 만납니다. 보고서는 이렇게 적었어요. 「봉제노동자들은 보통 1~2개 공정만을 반복적으로 담당하며, 시다나 보조 역할을 거쳐 숙련공으로 성장하는 위계화된 노동 경로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이 문장에는 선행 연구 인용이 달려 있으니 보고서가 기존 연구를 정리한 서술로 읽는 게 맞아요. 실제 응답을 보면 노동자 359명 가운데 미싱사가 218명(60.7%), 재단사가 52명(14.5%), 시다가 42명(11.7%)이었습니다. 응답자의 86.8%가 1~5인 사업체에 속해 있었고요.
값을 매기는 단위도 이 자료에 나옵니다. 같은 보고서가 「객공」을 이렇게 정의해요. 특정한 사업장에 소속되지 않고, 작업당 결정된 단가와 완성된 작업량에 비례해 보수를 받는 고용방식이라고요. 응답자의 34.5%가 객공 등 기타 고용형태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보고서가 두 가지를 함께 적었어요. 사업주는 고정비용을 줄일 수 있어 객공팀과 사업주 사이에 서로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서술이 하나 있고(이것도 선행 연구를 인용한 대목이에요), 면담에서 나온 「진짜 10년 전에도 천 원 받았고 지금도 그대로예요. 공임은 안 올라요」라는 말이 다른 하나예요. 둘 다 같은 보고서 안에 있습니다.
규모는 아주 작아요. 2021년 기준으로 전국 봉제업체가 29,807개, 종사자가 120,999명이니 업체당 평균 4.2명입니다. 서울에서는 응답 업체의 85.9%가 종사자 4인 이하였고, 종로구는 97.3%였어요. 종사자의 43.7%가 50대, 36.2%가 60대 이상입니다.
여기서 기억할 것 자리 나눔은 지금도 통계 분류에 남아 있어요. 어떤 자리는 항목이 되고 어떤 자리는 예시가 됩니다.
지금, 옷 한 벌이 지나가는 손은 나라를 건너요
1900년 미국 인구총조사에 이런 문장이 있어요. 「코트는 뉴욕시에서, 조끼는 윌리엄스버그에서, 바지는 뉴어크에서 만들어질 수 있고, 서로 다른 옷들은 도매상에게 도착할 때 한 벌로 합쳐진다.」 도급업자는 대개 코트면 코트, 바지면 바지 한 가지만 만들었고, 옷 한 벌 전체를 만드는 작업장을 찾기는 아주 드물다고도 적혀 있습니다.
같은 구조가 지금은 도시가 아니라 나라 단위로 놓여 있어요. 국제노동기구는 2025년 브리프에서 의류산업 하나만으로 세계에서 9,0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일하고 그 75%가 아시아에 있다고 적었습니다.
공장 안의 나눔도 남아 있어요. 같은 기구가 2017년에 낸 부문 브리프는 의류 공장의 인력 분포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봉제가 67%, 다림질과 마무리가 10%, 샘플과 검단이 10%, 패턴과 재단이 8%, 트리밍과 연단이 5%. 인력의 3분의 2가 한 공정에 몰려 있는 거예요. 그리고 같은 브리프에 이 편의 축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문장이 있습니다. 재봉틀 조작자에게는 정규 교육이 요구되지 않는 반면 재단기 조작자에게는 기술 교육이 필요하다고요. 백 년 전 뉴욕에서 재단이 제조업자의 건물 안에 남고 나머지가 밖으로 나갔던 것과 같은 자리에 지금도 선이 그어져 있어요.
다만 이 브리프의 자동화 전망은 예측이었다는 점을 밝혀 둘게요. 브리프는 자동 재봉 기계가 등장하면 봉제 공정이 대체될 수 있다고 보면서, 베트남과 캄보디아 의류 부문 노동자의 큰 몫이 자동화 위험에 놓여 있다는 추정을 실었습니다. 그 예측이 실제로 어떻게 됐는지는 이 조사에서 1차 자료로 확인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여기서는 예측을 예측으로만 적어 둡니다.
여기서 기억할 것 옷 한 벌이 여러 손을 지나가는 구조는 사라지지 않았어요. 그 손들 사이의 거리가 길어졌을 뿐입니다.
앞으로 무엇을 지켜보면 될까요
예측 대신 볼 자리를 적어 둘게요. 넷입니다.
첫째, 한 사람이 맡는 공정의 수예요. 이 편이 따라온 계열이 그것입니다. 옷 한 벌 전체에서 여러 공정의 묶음으로, 다시 한 가지 공정으로 좁아졌어요. 지금 한국의 조사는 봉제노동자가 보통 1~2개 공정을 맡는다고 적습니다. 이 숫자가 더 줄어드는지, 아니면 늘어나는지를 보면 방향이 보여요. 늘어나는 쪽으로 움직인 사례가 없지는 않습니다. 작은 작업장에서는 한 사람이 여러 공정을 맡아야 하니까요.
둘째, 값을 매기는 단위예요. 옷 한 벌이냐, 하루치 과업이냐, 주급이냐, 작업당 단가냐. 이 단위가 바뀔 때마다 같은 노동의 값이 달라졌습니다. 한국의 객공이 지금 어느 단위에 서 있는지, 그 단위가 움직이는지를 보세요.
셋째, 어느 공정이 다음으로 기계에 넘어가는지예요. 재단은 오래전에 기계로 넘어갔고 단춧구멍도 넘어갔습니다. 봉제는 아직 사람의 손에 크게 기대고 있어요. 국제기구의 자료에서 인력의 3분의 2가 봉제에 몰려 있는 것이 그 표시고요. 이 칸이 넘어가는지, 넘어간다면 그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를 보면 이 이야기의 다음 장이 보입니다.
넷째, 세는 방식이에요. 백여 년 전 미국 통계기관은 셋집의 일을 세지 못했다고 스스로 적었습니다. 지금 한국의 국가승인통계는 「시다」를 독립 직종으로 세지 않아요. 무엇을 세느냐가 무엇이 보이느냐를 정합니다. 분류가 바뀌는지를 보세요.
이 편이 끝까지 정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어요. 재봉틀이 좋은 일을 했는지 나쁜 일을 했는지예요. 대신 확인한 것은 이겁니다. 사라진 것은 바느질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이 옷 한 벌을 처음부터 끝까지 아는 상태였어요. 그 사람의 수는 오히려 늘었고, 각자가 아는 범위가 줄었을 뿐이에요.
여기서 기억할 것 예측이 아니라 관전법이에요. 한 사람이 맡는 공정의 수, 값의 단위, 다음에 넘어갈 공정, 그리고 세는 방식.
흔한 오해
엘리아스 하우가 재봉틀을 발명했다.
그의 특허 4,750호는 제목이 「재봉틀의 개량」이고, 청구항 다섯 개는 굽은 바늘과 북의 조합, 실을 들어 올리는 장치, 실을 잡아 두는 장치, 땀을 조이는 장치, 천을 물어 옮기는 판에 관한 것이에요. 재봉틀 자체를 발명했다는 주장은 없습니다. 1851년 싱어의 특허 8,294호도 제목이 똑같이 「재봉틀의 개량」이고 청구항은 셋뿐이고요. 스미스소니언 연구자는 실용적인 재봉틀이 한 사람의 천재성이 아니라 한 세기에 걸친 시도와 실패와 부분적 성공이 쌓인 결과라고 적었고, 하우가 재봉틀을 발명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그를 깎는 일이 아니라고 썼어요.
1831년 파리에서 재단사들이 티모니에의 재봉틀을 부쉈다.
널리 도는 연도와 스미스소니언 기록이 다릅니다. 그 기록으로는 티모니에가 1830년에 프랑스 특허를 받았고, 1841년에 파리의 한 작업장에서 기계 80대로 군복을 꿰매고 있을 때 재단사 무리가 들어와 기계를 부쉈어요. 그는 무일푼으로 파리를 떠났고, 4년 뒤 새 자금을 얻어 기계를 고치고 프랑스 첫 재봉틀 회사를 세웠지만 1848년 혁명으로 그 사업도 끝났습니다. 다만 이 편은 프랑스 쪽 1차 기록을 열지 못했어요. 그래서 연도를 확정하지 않고 「스미스소니언 기록으로는」이라는 꼬리표를 답니다.
손으로 셔츠 한 장에 14시간, 기계로는 1시간 남짓 걸렸다.
그 표는 1861년에 재봉틀 회사 휠러앤윌슨이 스스로 한 실험이에요. 표본은 손바느질꾼 네 명과 기계 조작자 네 명이었고, 표 제목이 「꿰맨 옷의 시간」이라 마르고 시침하고 단춧구멍을 내고 다리는 일은 들어 있지 않습니다. 한 해 앞선 신문 기사의 문장도 「셔츠에 하는 바느질은 한 시간」이었어요. 미국 노동부가 1898년에 셔츠 12다스 단위로 다시 쟀을 때 비율은 여섯 배에서 아홉 배 사이였고, 같은 제품인 두 단위에서도 공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아홉 배와 여섯 배로 갈렸습니다.
재봉틀이 들어오면서 바느질하는 사람이 줄었다.
같은 물건에 손을 대는 사람의 수는 오히려 늘었어요. 미국 노동부 조사에서 셔츠 12다스를 옛 방식으로 만든 단위는 사람이 한 명이었고, 기계 방식의 같은 단위는 열네 명과 서른여덟 명이었습니다. 1900년 인구총조사는 과업제에서 스무 사람을 쓰는 곳이라면 공장은 이백 사람을 쓸 것이라고 적었고, 코트 한 벌에 백 명 넘게 붙는 공장이 있다고 적었어요. 1911년 노동국 조사에서는 코트 한 벌이 서른 사람쯤의 손을 지나갔고 어떤 공장에서는 예순 사람을 지나갔습니다. 줄어든 것은 사람 수가 아니라 한 사람이 아는 공정의 수예요.
스웨트숍은 노동조건이 나쁜 공장이다.
당대의 정의는 공장이 아니라 도급 사슬이었어요. 1900년 미국 인구총조사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제조업자」라 불리는 도매 회사가 일을 도급업자들에게 넘기면, 그들은 자기 집이나 작은 작업장에서 일하거나 다시 다른 도급업자에게 넘기거나 개인들에게 나눠 주고, 각자 계약 금액과 자기가 주는 임금의 차액으로 이익을 냅니다. 제조업자의 건물에서 이뤄지는 일은 천과 안감을 마르는 것뿐이었어요. 도급업자가 되는 데 자본이 거의 필요 없다는 것이 경쟁의 중요한 요인이었다고도 적혀 있고요. 영국 상원 위원회는 그러면서도 「‘착취’에 정확한 뜻을 부여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한마디로
재봉틀 이전에 옷 한 벌은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었어요. 영국 상원 위원회가 1890년에 받아 적은 말로는, 제대로 훈련받은 재단사는 자기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았습니다. 기계가 들어온 뒤 그 일은 여러 사람의 한 동작으로 나뉘었어요. 미국 노동부가 1898년에 조사한 셔츠 12다스 단위에서 옛 방식은 사람이 한 명이었고 기계 방식은 열네 명과 서른여덟 명이었습니다. 1911년 조사에서 코트 한 벌은 과업 작업장에서 대여섯 사람, 구역제 작업장에서 서른 사람, 어떤 공장에서는 예순 사람의 손을 지나갔어요. 값을 매기는 단위도 옷 한 벌에서 하루치 과업으로, 다시 주급과 작업당 단가로 옮겨 다녔고요. 널리 도는 「손 14시간, 기계 1시간 16분」이라는 표는 재봉틀 회사가 손바느질꾼 넷과 기계 조작자 넷으로 스스로 한 실험이었고 잰 것은 꿰맨 시간이었습니다. 미국 통계기관은 셋집의 일을 세지 못했다고 스스로 적었어요. 확인된 것은 이겁니다. 사라진 것은 바느질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이 옷 한 벌을 처음부터 끝까지 아는 상태였어요.
참고 자료
본문의 연도와 숫자는 아래 자료를 근거로 씁니다. 틀린 곳을 찾으시면 알려주세요.
- 제13차 노동장관 연차보고서 「손 노동과 기계 노동」 제1권 미국 노동부(1899) /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FRASER 「손」과 「기계」의 정의, 손 방식 자료를 은퇴한 사람들에게서 모았다는 서문, 셔츠 12다스 단위의 시간·인원·작업 연도, 남성복 단위의 공정별 시간을 여기서 확인했습니다. 스캔 원문이라 용량이 큽니다
- 제12차 미국 인구총조사 제9권 제3부 「의류」 미국 인구총조사국(1902) 과업제의 성립과 조 편성과 삯, 공장식 분업, 스웨트숍의 정의, 동력 사용 비율, 칼라 공장의 직명, 그리고 셋집의 일을 세지 못했다는 총조사 자신의 고백
- 여성·아동 임금노동자 실태 보고 제2권 「남성 기성복」 (상원 문서 645호) 미국 노동국(1911) / 인터넷 아카이브 과업제와 구역제의 정의, 코트 한 벌이 지나간 손의 수, 조끼와 바지의 분할 정도를 전문 텍스트에서 확인했습니다
- 영국 상원 착취노동 조사위원회 제5차 보고서(1890) 영국 상원 / 인터넷 아카이브 재단사가 자기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았다는 서술, 스물다섯 갈래 분업 증언, 코트 다림질공이 조끼를 못 다린다는 증언, 그리고 「착취에 정확한 뜻을 부여할 수 없다」는 문장
- 재봉틀의 발명 (The Invention of the Sewing Machine) 그레이스 로저스 쿠퍼, 스미스소니언 국립미국사박물관(1968) /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티모니에의 프랑스 특허와 기계 파괴, 1861년 휠러앤윌슨 비교 실험표, 공장주 진술의 원 출처를 여기서 확인했습니다. 실험표의 원 간행물은 이 조사에서 열지 못했습니다
- 재봉틀 이야기 (1860년 1월 7일자) 뉴욕타임스 / 인터넷 아카이브 웨이백 머신 스냅샷 「신사 셔츠에 하는 바느질」 문장과 뉴헤이븐 공장의 기계 대수. 본사 페이지는 자동 접근이 막혀 있어 보존 스냅샷으로 원문을 확인했습니다
- 미국 특허 4,750호 — 재봉틀의 개량(엘리아스 하우) 미국 특허청(1846년 9월 10일) 제목과 청구항 다섯 개를 직접 읽었습니다
- 미국 특허 8,294호 — 재봉틀의 개량(아이작 싱어) 미국 특허청(1851년 8월 12일) 제목과 청구항 셋을 직접 읽었습니다
- 19세기 후반 제조업의 「자동화」 — 손 노동과 기계 노동 조사 제러미 애택·로버트 마고·폴 로드,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33권 2호(2019) 1898년 조사를 전산화해 다시 분석한 연구. 그 조사의 한계를 넷으로 정리했고, 공정 수가 기계 방식에서 크게 늘었다는 계산을 실었습니다
- 섬유·의류 부문의 양질의 일자리 과제와 기회 (2025년 3월 브리프) 국제노동기구 의류산업 종사자 규모와 아시아 비중. 브리프가 자기 기관의 다른 페이지를 각주로 달았으므로 등급을 낮춰 읽어야 합니다
- 기술은 일자리와 기업을 어떻게 바꾸는가 — 의류 부문 브리프(2017년 4월) 국제노동기구 사용자활동국 의류 제조 공정의 인력 분포와, 재봉틀 조작자에게는 정규 교육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서술. 자동화 전망은 예측이며 그 뒤 결과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 2023년 봉제업체 실태조사 결과보고서 (국가승인통계 115030) 산업통상자원부 · 한국패션산업협회(2023년 12월) 부록의 직종분류(시다가 기타 항목의 예시), 봉제업체 수와 종사자 수, 서울의 4인 이하 업체 비율, 종사자 연령 분포를 확인했습니다. 협회 홈페이지는 koreafashion.org 입니다
- 서울시 의류봉제업 종사자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한 실태조사 및 정책방안 연구 서울노동권익센터(2025년 11월 30일) 봉제노동자가 보통 1~2개 공정을 맡는다는 서술, 객공의 정의, 직무·규모·고용형태 분포, 공임에 대한 면담 인용
- 기업 연혁 페이지 싱어(Singer) 「손으로 14시간, 싱어로 1시간 16분」이라는 문구가 지금도 실려 있는 자리입니다. 이 계열이 아직 돌고 있다는 사례로만 인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