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유전자 수평 전파

부모에게서 책을 물려받는 대신,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가진 요리책의 비법 페이지를 곧바로 복사해 오는 일과 같아요.

정의

부모가 자손에게 물려주는 길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개체 사이에서 유전 물질이 옮겨 가는 현상이에요. 세포끼리 직접 건네기도 하고, 주변에 흩어진 DNA나 바이러스를 거치기도 해요. 주로 세균 같은 미생물 사이에서 일어나요. 그래서 한 균이 얻은 성질이 종을 넘어 다른 균에게로 건너가기도 해요.

족보를 거치지 않고 옆으로 건네는 유전자

어릴 적 짝꿍과 공책을 맞대고 숙제 정답을 베껴 써 본 적이 있을 거예요. 사람이나 동물 같은 생명체는 보통 부모의 유전자를 자식에게 아래 방향으로만 물려줘요. 이를 세로 방향의 전파, 즉 수직 전파라고 불러요.

하지만 미생물의 세상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나요. 옆에 있는 다른 세균에게 자신의 유전자 일부분을 슬쩍 건네줄 수 있거든요. 심지어 친척이 아닌 완전히 다른 종류의 세균끼리도 이런 교환이 일어나요.

피를 나눈 부모 자식 사이가 아닌데도 이웃한 개체끼리 옆으로 유전자를 전달하기 때문에 '수평 전파'라는 이름이 붙었어요. 이 덕분에 미생물은 여러 세대에 걸쳐 돌연변이가 쌓이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새로운 능력을 빠르게 얻을 수 있어요.

세균이 약을 이겨내는 뜻밖의 방법

병원에서 쓰는 항생제는 세균을 공격해 없애는 약이에요. 어떤 세균 하나가 항생제를 분해하는 효소 유전자를 작은 유전자 고리인 플라스미드에 지니고 있다고 가정해 볼게요.

보통이라면 이 세균이 번식해 자손을 많이 퍼뜨려야 내성이 널리 퍼져요. 하지만 이 플라스미드는 접합을 통해 복사본이 다리를 건너 옆 세균에게 넘어갈 수 있어요. 내성은 사람 몸이 약에 둔감해지는 일이 아니라 세균 쪽에서 생기는 변화예요. 세균이 항생제를 분해하는 설계도를 옆 친구에게 복사해 주면, 약을 겪어보지 않은 세균도 약을 견디는 세균이 될 수 있어요.

수평 전파 덕분에 내성 유전자는 종의 경계를 넘어 빠르게 퍼질 수 있고, 항생제를 쓰는 환경에서는 약을 견디는 세균만 살아남아 더욱 늘어나요. 여러 약이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가 빠르게 나타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어요.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생명의 나무가 그물망이 되는 순간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유전자 수평 전파는 단순히 플라스미드를 건네는 접합 방식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에요. 세균이 죽으면서 주변에 흘린 DNA 조각을 다른 세균이 주워 삼키기도 하고, 바이러스가 세균을 감염시키는 과정에서 이전 숙주의 DNA를 배달해 주기도 해요.

과거 과학자들은 모든 생물이 하나의 뿌리에서 갈라져 나오는 커다란 나무 모양으로 진화했다고 생각했어요. 가지가 위로만 뻗어나가듯 유전자가 세대를 거쳐 전해지는 수직적인 계통수를 그렸죠.

하지만 수평 전파가 널리 밝혀지면서, 특히 미생물의 진화사는 서로 다른 가지가 얽히고설킨 거대한 그물망의 모습에 가깝다는 관점이 힘을 얻고 있어요. 다만 동식물 같은 생물의 계통은 여전히 나무 모양으로 잘 설명된다는 견해도 있어 논의가 이어지고 있어요. 심지어 인간을 포함한 복잡한 다세포 생물의 유전체 안에도 먼 옛날 바이러스나 세균으로부터 건너온 외래 유전자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어요.

흔한 오해

오해

항생제 내성은 사람이 약을 자주 먹어서 사람 몸에 생기는 현상이다.

사실

내성은 사람의 몸이 약에 익숙해지는 일이 아니라 미생물 쪽에서 일어나는 변화예요. 세균이 약을 버텨내는 유전자를 수평 전파 등으로 서로 주고받으면서 내성을 가진 세균 집단이 늘어나는 거예요.

오해

유전자는 언제나 부모가 자식을 낳아 물려주는 방법으로만 전해진다.

사실

부모 자식 간의 수직 전달 외에도, 서로 다른 개체 사이에서 유전 물질이 옮겨 가는 수평 전파가 자연계에 널리 존재해요.

일상에서 만나요

  1. 장내 세균들이 항생제를 분해하는 유전자가 담긴 플라스미드를 서로에게 건네줘요.

  2. 토양 세균인 아그로박테리움이 식물 세포 속으로 자신의 DNA를 직접 주입해 식물에 혹을 만들어요.

  3. 먼 옛날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로 옮겨놓은 유전자가 오늘날 포유류의 태반을 만드는 데 쓰이고 있어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유전자 수평 전파는 부모 자식 사이가 아닌 서로 다른 개체 사이에서 유전자가 옮겨 가, 새로운 능력을 빠르게 얻게 해 주는 생명 현상이에요.

이 개념이 나오는 이야기

제작 2024-12-05 갱신 2026-10-12 검증 2026-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