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천연두를 앓아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앓은 사람을 본 적 있는 사람도 드물고요. 병원에 이 병 검사가 없고, 입국할 때 접종 증명을 요구하는 나라도 없어요.
당연해 보이지만 당연하지 않아요. 지구에서 사라졌다고 공식 선언된 병은 지금까지 둘뿐이에요. 그중 사람이 걸리는 병은 천연두 하나예요. 나머지 하나는 소가 걸리던 병이고요. 결핵도 말라리아도 홍역도 아직 남아 있어요.
어른들의 팔 위쪽에 동그란 흉터가 있는 걸 본 적 있나요. 그게 이 이야기의 끝부분이에요. 그 흉터를 만든 세계 캠페인은 1967년에 시작해 13년 만에 끝났어요. 그런데 그 캠페인 예산을 담은 그해 기구 예산안이 표결에 부쳐진 날, 찬반의 차이는 단 두 표였어요. 그리고 그 표결이 있기까지, 사람들은 이미 200년 넘게 이 병과 씨름하고 있었어요.
한눈에 보는 연표
인두법
- 1721 몬터규와 보일스턴, 인두 접종을 서구에 들이다
우두법
- 1796 제너, 소의 우두로 천연두를 막아 보이다
- 1879 지석영, 충주에서 40여 명에게 종두를 놓다
박멸 계획
- 1958 소련 즈다노프, 세계 박멸을 총회에 제안
- 1966 강화 계획 예산, 단 2표 차로 통과
- 1967 강화 박멸 계획 시작. 33개국이 아직 유행 중
- 1974 인도, 20세기 최악의 유행 18만 8,003건
마지막 환자
- 1975 방글라데시에서 마지막 대두창 환자를 찾다
- 1977 소말리아에서 마지막 자연 감염 환자가 나오다
- 1978 영국 실험실 유래 감염, 마지막 사망자
박멸 이후
- 1980 세계보건총회, 천연두 박멸을 선언
- 2022 엠폭스 유행에 천연두 대비 수단이 쓰이다
지구에서 지워진 병은 둘, 사람의 병은 하나
천연두는 바리올라라는 바이러스가 일으킨 병이었어요. 감염되고 7일에서 19일쯤 지나면 열이 오르고, 얼굴과 팔다리에 오톨도톨한 발진이 돋았어요. 딱지가 전부 떨어질 때까지 남에게 옮길 수 있었고요. 주로 얼굴을 마주한 채 꽤 오래 함께 있을 때 옮았어요.
같은 병에도 두 갈래가 있었어요. 독한 쪽인 대두창에 걸리면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의 표현으로 10명 중 3명이 죽었어요. 덜 독한 소두창은 훨씬 덜 치명적이었고요. 이 차이는 뒤에 나올 마지막 환자 이야기에서 다시 나와요.
세계보건기구는 20세기에만 3억 명쯤이 이 병으로 죽은 것으로 추정해요. 집계가 아니라 추정이고, 자료에 따라 더 크게 잡기도 해요. 어느 쪽이든 20세기의 어떤 전쟁보다 큰 숫자예요.
그런데 이 병에는 지우는 쪽에 유리한 조건이 몇 가지 있었어요. 첫째, 바이러스가 사람에게만 살았어요. 소나 쥐 같은 곳에 숨어 있다가 몇 해 뒤 다시 튀어나올 길이 없었다는 뜻이에요. 둘째, 걸리면 누구나 눈에 띄는 발진이 났어요. 셋째, 아무 증상 없이 남에게 옮기고 다니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러니 환자를 찾으면 전파의 사슬을 볼 수 있었어요.
숨을 곳이 없는 병이었던 거예요. 지금까지 지구에서 사라졌다고 선언된 질병이 둘뿐이고 그중 사람의 병이 하나뿐인 이유가 여기 있어요. 나머지 하나는 소가 걸리던 우역인데, 그것도 사람의 병이 아니라 가축의 병이에요. 소아마비와 기니충증이 마지막 구간에 들어와 있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이 조건들은 물론 필요조건일 뿐이었어요. 조건이 갖춰져 있다고 일이 저절로 되지는 않아요. 사람들이 그 조건을 알아본 뒤로도 병이 사라지기까지는 아주 오래 걸렸거든요.
여기서 기억할 것 이 병이 지워질 수 있었던 건 약해서가 아니라 숨을 곳이 없어서였어요. 다만 조건이 갖춰졌다는 것과 실제로 해내는 것은 다른 문제예요.
일부러 병을 몸에 넣던 시절
이 병은 아주 오래된 병이에요. 이집트 파라오 람세스 5세의 미라 머리에서 천연두로 보이는 흔적이 확인됐다는 보고가 있고, 문헌으로는 4세기 중국의 기술이 가장 이른 축에 들어요. 유럽에서는 18세기에만 해마다 40만 명쯤이 죽고 살아남은 사람의 3분의 1이 시력을 잃었다는 추정이 남아 있어요.
백신이 나오기 전에도 사람들은 손을 놓고 있지 않았어요. 인두법이라는 방법이 있었거든요. 천연두 환자의 고름이나 딱지를 건강한 사람의 피부에 살짝 넣는 거예요. 그러면 대개 가볍게 앓고 지나가고, 그 뒤로는 다시 걸리지 않았어요. 아프리카와 인도, 중국, 오스만 제국에서 오래전부터 행해졌다고 전해져요. 언제 어디서 시작됐는지는 지금도 사료로 확정되지 않아요.
1721년 런던에서 메리 워틀리 몬터규가 네 살 딸에게 이 접종을 시켰어요. 그는 자기도 천연두를 앓아 얼굴에 흉이 남았고 남동생을 그 병으로 잃은 사람이었어요. 같은 해 대서양 건너 보스턴에도 천연두가 돌았어요. 목사 코튼 매더는 자기 집 노예였던 오네시무스에게 아프리카에서 그런 접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고, 그걸 근거로 접종을 권했어요. 의사 자브디엘 보일스턴이 실행에 옮겼고요.
결과는 숫자로 남았어요. 보일스턴이 접종한 242명 가운데 6명이 죽었어요. 접종하지 않은 채 천연두에 걸린 사람의 사망 비율은 약 14%였고요. 숫자만 보면 답이 나온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반대가 극심해서 보일스턴의 가족이 위협을 받을 정도였어요.
반대한 쪽에도 할 말은 있었어요. 인두법은 진짜 천연두를 몸에 넣는 방법이에요. 접종받은 사람이 죽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 사람이 앓는 동안 이웃에게 진짜 천연두를 옮길 수 있었어요. 내 아이를 지키려고 옆집 아이를 위험에 빠뜨리는 셈이 되는 거예요. 이건 미신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였어요.
여기서 기억할 것 숫자가 유리해도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어요. 그 이유를 지운 것이 다음 장의 발명이에요.
젖소에게서 온 이름
1796년 5월 14일, 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사라 넬름스의 손에 잡힌 물집에서 액체를 뽑았어요. 넬름스가 앓던 것은 천연두가 아니라 소에게서 옮은 우두였어요. 제너는 그 액체를 여덟 살 제임스 핍스의 팔에 흠집을 두 군데 내고 넣었어요. 아이는 가볍게 앓고 회복했어요. 그해 7월, 제너는 같은 아이에게 이번엔 진짜 천연두 고름을 넣었어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1798년에 제너는 이 결과를 책으로 냈어요. 우두를 앓았던 사람 열세 명의 사례를 핍스의 이야기와 함께 실었고요. 책 제목에 쓴 라틴어 variolae vaccinae 의 vacca 가 '소'라는 뜻이에요. 백신이라는 말은 이렇게 소에서 왔어요.
우유 짜는 여인들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시골의 이야기를 제너가 듣고 착안했다는 일화가 자주 인용돼요. 다만 그 일화 자체는 사료로 확정되지 않아요. 확인되는 건 우두에 걸린 넬름스가 제너를 찾아왔고 제너가 그 고름을 썼다는 것까지예요.
이 방법이 인두법을 밀어낸 이유는 안전성만이 아니었어요. 우두는 사람 사이에 천연두를 옮기지 않아요. 앞 장의 딜레마가 사라진 거예요. 책은 출간 20년 안에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이탈리아어, 일본어로 번역됐어요. 1807년에는 바이에른이 신병에게 접종을 의무화했어요.
한국에 이 방법이 들어온 것은 한참 뒤예요. 정약용과 이규경, 최한기가 글로 소개한 기록은 앞서 있었지만, 실제 시술은 1879년에 이뤄졌어요. 지석영이 부산의 제생의원에서 두 달간 종두법을 배우고, 그해 12월 처가가 있는 충주 덕산면으로 가는 길에 두 살 처남을 비롯해 40여 명에게 접종했어요. 이듬해에는 수신사를 따라 일본에 가 두묘 만드는 법을 배우고 두묘 50병을 갖고 돌아와 서울에 종두장을 열었어요. 1900년에는 그해 접종자가 4만 6,027명으로 집계됐어요.
여기서 기억할 것 여기서 도구는 완성됩니다. 그런데 도구가 있다고 병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이 다음 장의 이야기예요.
백신이 나오고 한 세기 반, 병은 왜 그대로였을까
제너의 책이 나오고 한 세기 반이 훌쩍 지난 뒤에도 천연두는 세계 곳곳에 남아 있었어요. 유럽과 북미에서는 거의 사라졌지만,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브라질에서는 해마다 사람이 죽고 있었어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었어요. 백신은 이미 있었으니까요.
1958년 5월,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열린 세계보건총회에서 소련 보건차관 빅토르 즈다노프가 긴 보고서를 들고 나왔어요. 세계에서 이 병을 아예 없애자는 제안이었어요. 소련은 동결건조 백신 2,500만 회분을 내겠다고 했고요. 그의 논리가 흥미로워요. 병이 남아 있는 나라가 하나라도 있으면, 병이 없는 나라도 계속 접종하고 계속 검역해야 해요. 그 비용이 아예 없애는 비용보다 크다는 거였어요.
이건 지금도 통하는 셈법이에요. 접종은 맞은 사람만 보호하지 않아요. 주변 사람이 걸릴 확률도 함께 낮춰요. 이익이 남에게까지 흘러가는 대신, 비용은 맞는 사람이 부담하죠. 나라 사이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져요. 내 나라에 병이 없으면 남의 나라 방역에 돈을 낼 이유가 약해지고,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면 마지막 유행 지역이 계속 남아요. 남은 지역이 있는 한 모두가 계속 돈을 쓰고요.
1959년 총회는 만장일치로 결의를 냈어요. 유행 지역에서 4~5년 안에 인구의 80%에게 접종하면 박멸이 가능하다는 판단이었어요. 그런데 결의문에는 신고 체계도, 발병을 봉쇄하는 방법도, 언제까지 하겠다는 시한도 없었어요. 세계보건기구의 힘은 말라리아 쪽에 쏠려 있었고, 천연두 예산은 오랫동안 미미했어요.
판이 움직인 것은 1966년 5월이었어요. 더 작게 시작하자는 프랑스 안과 미국의 절충안이 차례로 부결되고, 천연두 예산 241만 5,000달러를 전부 담은 예산안이 표결에 부쳐졌어요. 결과는 2표 차 통과였어요. 세계보건기구 역사상 예산안이 가장 근소하게 통과된 사례예요. 그 돈은 41개국에서 사업을 돌린다는 전제였으니 나라당 한 해 6만 달러가 안 됐어요. 그래도 기구 전체 예산의 4.7%였고, 전년도 배정액의 열 배쯤이었어요.
반대한 쪽이 인색해서 그런 건 아니었어요. 말라리아 박멸 계획이 몇 해째 고전하는 걸 다들 보고 있었거든요. 또 하나의 거대한 계획을 벌였다가 실패하면 기구의 신뢰가 흔들린다는 걱정은 그때로선 합리적인 걱정이었어요.
여기서 기억할 것 기술이 준비된 뒤에도 판이 움직이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어요. 움직인 것도 기술이 아니라 예산 표결이었고요.
모두에게 놓는 대신, 불이 난 자리 둘레만
1967년 1월에 강화 계획이 시작됐어요. 그때 천연두는 33개국에서 유행하고 있었고 그 나라들의 인구는 12억이었어요. 그해에만 1,000만에서 1,500만 명이 걸리고 200만 명쯤이 죽은 것으로 추정돼요.
출발선의 상태는 좋지 않았어요. 그해 세계보건기구의 기준 시험을 통과한 백신 배치는 31%뿐이었어요. 유행국에서 실제로 쓰이던 백신 중 기준을 채운 것은 15%가 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됐고요. 무기의 대부분이 제 몫을 못 하는 상태로 시작한 셈이에요.
이 계획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새로운 발견이 아니라 이미 있던 것 셋을 제대로 쓴 일이었어요. 첫째는 열에 견디는 백신이에요. 액체 백신은 더운 곳에서 금세 힘을 잃어요. 리스터 연구소의 레슬리 콜리어가 1940년대 말에서 1950년대 초 사이에 백신에 펩톤을 넣고 얼려서 말리는 방법을 다듬었어요. 가루가 된 백신은 더위 속에서도 버텼어요. 냉장 없이 백신을 실어 나를 수 있게 된 거예요. 이 백신이 없었다면 열대 지역에서 캠페인을 펴기가 훨씬 어려웠을 거예요.
둘째는 바늘이에요. 1965년에 벤저민 루빈이 재봉틀 바늘의 구멍을 갈아 끝을 포크처럼 두 갈래로 만들었어요. 갈라진 틈에 백신 한 방울이 저절로 걸리니 양을 잴 필요가 없고, 피부를 여러 번 콕콕 찌르기만 하면 돼요. 하루면 배울 수 있었어요. 의료인이 아닌 사람도 접종 인력이 될 수 있다는 뜻이었어요.
셋째가 가장 컸어요. 1966년 무렵 나이지리아에서 일하던 윌리엄 포기는 백신이 모자란 상황에 부딪혔어요. 인구의 80%에게 놓으라는 지침을 지킬 물량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는 순서를 바꿨어요. 어디에서 환자가 나왔는지부터 알아내고, 그 환자와 닿았을 만한 사람들에게만 접종한 거예요. 불을 끄는 대신 불이 번질 자리를 미리 적셔 두는 방식이었어요.
이 방식은 감시-봉쇄, 또는 고리 접종이라고 불리게 됐어요. 결과가 놀라웠어요. 훨씬 적은 접종으로 전파가 끊겼거든요. 병은 아무 데로나 퍼지지 않고 사람과 사람이 닿는 선을 따라 퍼져요. 그 선의 길목만 막으면 전체를 덮을 필요가 없어요. 정작 포기 본인은 자기가 고안한 게 아니라며 공을 사양했어요. 세계보건기구의 기록도 영국에서 쓰던 옛 방식이 같은 얼개였다고 적고 있어요.
여기서 기억할 것 전 국민 접종이라는 목표를 내려놓은 순간 목표가 가까워졌어요. 이 이야기에서 판이 뒤집히는 자리예요.
포상금을 걸고 마지막 한 사람을 찾아 나서다
감시-봉쇄가 돌아가려면 먼저 환자가 어디 있는지 알아야 해요. 그런데 병이 줄어들수록 환자를 찾기가 어려워져요. 남은 환자가 드물어질수록 한 명을 찾는 데 드는 노력은 오히려 커지거든요.
인도가 그 어려움을 정면으로 겪었어요. 1974년에는 18만 8,003건을 보고했어요. 인도가 20세기 들어 겪은 가장 큰 유행이었어요. 큰 유행이 실제로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감시를 강화하자 그동안 안 보이던 발병 지점이 드러난 것도 사실이에요. 숫자가 치솟은 그때가 끝의 시작이었어요. 그해 말부터 인도는 한 달에 엿새씩 전국 1억 가구를 집집이 돌았어요. 33,000명의 보건 인력과 10만 명이 넘는 현장 요원이 57만 5,721개 마을과 2,641개 도시를 훑었어요.
찾는 일에는 돈도 걸렸어요. 환자를 신고한 사람과 확인한 보건 인력에게 포상금을 줬어요. 처음엔 적었다가 계속 올라 1978년에는 1,000달러까지 갔어요. 조사팀은 마을에 들어가면 사람들에게 포상금이 얼마인지 아느냐고 물었어요. 그 대답으로 캠페인 소식이 얼마나 최근에 이 마을까지 닿았는지를 가늠한 거예요.
1975년 10월, 방글라데시 볼라섬의 쿠랄리아 마을에서 세 살 라히마 바누가 발견됐어요. 자연 상태에서 대두창에 걸린 마지막 사람이에요. 그를 신고한 것은 여덟 살 소녀 빌키수네사였고 포상금 250타카를 받았다고 전해져요.
마지막 자연 감염 환자는 2년 뒤에 나왔어요. 1977년 10월 소말리아 메르카에서 병원 조리사로 일하던 알리 마오 마알린이었어요. 그가 걸린 것은 덜 독한 소두창이었고, 그는 회복했어요. 접촉자가 많았는데도 병에 걸린 사람은 나오지 않았어요. 그는 나중에 소아마비 박멸 운동의 지역 조정관으로 일했어요.
그다음이 진짜 어려운 일이었어요. '있다'는 환자 한 명이면 증명되지만 '없다'는 그렇지 않거든요. 그래서 각 나라는 마지막 환자가 나온 뒤로도 2년 넘게 감시를 이어 갔고, 국제위원회가 찾아와 확인했어요. 신고 체계가 실제로 도는지, 주민이 이 병을 알아보는지, 수두 검체를 검사하면 무엇이 나오는지를 봤어요. 얼굴에 곰보 자국이 있는 사람이 있는지도 조사했어요. 이 조사에는 함정이 하나 있어요. 흉터는 살아남은 사람에게만 남거든요. 그래서 흉터 조사는 과거에 병이 있었다는 증거는 되어도,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는 말해 주지 않아요. 21개 위원회가 61개국을 돌았어요.
여기서 기억할 것 '있다'는 한 사람으로 증명되지만 '없다'는 그렇지 않아요. 마지막 구간이 가장 길었던 이유예요.
병이 사라진 다음 해에 나온 마지막 사망자
자연에서 마지막 환자가 나온 것은 1977년이에요. 그런데 천연두로 죽은 마지막 사람은 그 이듬해에 나왔어요. 자연이 아니라 실험실에서요.
영국에는 실험실에서 시작된 감염이 세 번 기록돼 있어요. 1949년에는 새로 온 직원이 접종받은 날 감염된 기구를 다루다 스스로에게 접종한 꼴이 됐어요. 2차 감염은 없었어요. 1973년의 두 번째 사례는 결이 달랐어요. 천연두 실험실을 견학하던 기술자가 감염돼 아주 가벼운 증상만 보였고, 진단이 늦어 일반 병동에 누워 있었어요. 그동안 옆 침대 환자를 찾아온 방문객 두 사람이 감염됐고, 두 사람 모두 죽었어요.
세 번째가 1978년 버밍엄 의과대학이에요. 의학 사진가 재닛 파커는 천연두 실험실 위층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그가 어떻게 감염됐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어요. 세계 인증위원회의 최종보고서도 '알 수 없는 경로'라고만 적어요. 파커는 그해 9월 11일에 죽었어요. 그가 감염시킨 사람은 한 명이고 증상은 매우 가벼웠어요. 실험실 책임자였던 미생물학자 헨리 베드슨은 파커가 죽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이 세 사건이 말해 주는 게 있어요. 한 층 위의 사무실 하나가 세계 전체의 성과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에요. 바이러스가 아무리 좁은 곳에 갇혀 있어도, 그 좁은 곳이 세계와 이어져 있으면 위험은 남아요. 사고 뒤 영국은 위험한 병원체를 다루는 규칙을 크게 손봤어요.
같은 해 세계보건기구는 제네바에 '천연두 소문 등록소'를 만들었어요. 어디서 천연두가 나왔다는 소문이 돌면 전부 등록하고 실제로 확인하는 창구였어요. 아무것도 안 나올 것을 알면서도 계속 확인하는 일이었어요.
1979년 12월, 세계 천연두 박멸 인증위원회가 제네바에서 마지막 회의를 열고 결론을 냈어요. 박멸이 전 세계에서 달성됐고, 천연두가 다시 유행병으로 돌아온다는 증거는 없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1980년 5월 8일, 제33차 세계보건총회가 결의로 이를 선언했어요. "세계와 모든 사람이 천연두로부터 자유를 얻었다."
그 인증위원회 보고서에는 눈에 덜 띄는 대목이 하나 더 있어요. 서부와 중부 아프리카에서 그때까지 발견된 원숭이두창 45건을 언급하면서, 이 병을 계속 감시하라고 권고한 부분이에요. 당시 위원회는 그 바이러스가 유행성으로 번질 가능성은 없다고 봤어요. 그때 가진 자료로는 합리적인 판단이었어요.
여기서 기억할 것 자연에서 병을 지운 뒤에도 위험은 남아 있었어요. 그 남은 위험이 어디에 있는지가 다음 장의 주제예요.
없앤 바이러스가 아직 두 곳에 남아 있는 이유
박멸 선언이 났다고 바이러스가 지구에서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에요. 연구용 보유분이 남았어요. 지금은 두 곳이에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와 러시아의 벡터 연구소이고, 세계보건기구가 2년마다 두 곳을 사찰해요.
없애자는 결정은 이미 있었어요. 1996년 세계보건총회가 폐기 시한을 정했거든요. 그런데 1999년 결의가 항바이러스제와 개량 백신, 바이러스의 유전 구조를 더 연구해야 한다며 보유를 승인했어요. 2002년에 다시, 2007년에 또 한 번 연장됐고요. 2024년 총회는 보유를 그대로 두고 사찰을 계속하기로 했어요. 폐기 시한은 다시 정해지지 않았어요.
양쪽 다 이유가 있어요. 남겨 두자는 쪽은 진단법과 치료제를 검증하려면 살아 있는 바이러스가 있어야 한다고 말해요. 없애자는 쪽은 남아 있는 한 사고와 유출의 위험이 계속된다고 말하고요. 앞 장에서 본 세 번의 실험실 사고가 그 걱정의 근거예요.
그런데 논쟁의 지형 자체가 바뀌었어요. 2023년 세계보건기구 자문위원회는 유전 정보만 있으면 바이러스를 처음부터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이 실제로 가능해졌다는 점을 지적했어요. 시험관을 없애는 것과 정보를 없애는 것은 다른 일이에요. 같은 위원회는 인구의 면역이 약해진 점, 면역이 떨어진 사람이 늘어난 점을 함께 들면서 천연두에 대한 대비 태세가 지금 충분하지 않다고 적었어요.
그래서 백신도 아직 남아 있어요. 세계보건기구는 스위스에 270만 회분을 직접 보관하고 정기적으로 힘이 남아 있는지 확인해요. 프랑스, 독일, 일본, 미국이 약 2,800만 회분을 따로 약정해 두었고요.
그리고 그 준비가 실제로 쓰였어요. 2022년 5월부터 여러 나라에서 엠폭스가 번졌어요. 세계보건기구는 그해 7월 23일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언했고 이듬해 5월 10일 해제했어요. 116개국에서 9만 2,000건이 넘는 확진이 보고됐고요. 원숭이두창 바이러스는 천연두 바이러스와 같은 무리에 속해요. 그래서 천연두를 대비해 만들어 둔 백신과 치료제가 이 유행에 쓰였고, 세계보건기구는 두 갈래 바늘로 접종하는 방법까지 다시 안내했어요.
한 가지는 조심해서 읽어야 해요. 천연두 접종을 그만두어서 엠폭스가 퍼졌다고 잘라 말하기는 어려워요. 접종 중단으로 사람들의 면역이 약해진 것은 자료에 적힌 요인 중 하나이고, 자문위원회는 면역억제 질환의 증가와 바이러스 자체의 변화, 진단과 백신에 접근하기 어려운 사정을 함께 들어요. 두 가지가 나란히 관찰된다고 해서 하나가 다른 하나의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어요.
여기서 기억할 것 지워진 병을 위한 준비가 다른 병에 쓰였어요. 그래서 이 이야기는 아직 닫히지 않았어요.
다음 병이 지워질 때 무엇을 보면 될까
앞일을 맞히려 들 필요는 없어요. 대신 이 이야기가 알려 준 규칙에 비춰, 어디를 보고 있으면 판이 움직이는 걸 먼저 알아챌 수 있는지만 정리해 볼게요.
첫째, 남은 바이러스의 처분이에요. 시한이 정해졌다가 세 번 미뤄졌고 지금은 시한 자체가 없어요. 논쟁이 다시 시한을 만드는 쪽으로 가는지, 아니면 유전 정보를 다루는 규칙 쪽으로 옮겨 가는지를 보면 돼요. 시험관을 없애는 것과 설계도를 없애는 것은 다른 일이니까요.
둘째, 마지막 구간이에요. 소아마비와 기니충증이 지금 그 구간에 있어요. 천연두에서 확인된 것은 환자가 줄어들수록 한 명을 찾는 비용이 오히려 커진다는 거였어요. 남은 환자 수가 아니라, 마지막 환자를 찾는 데 얼마를 쓰고 있는지를 보는 편이 정확해요.
셋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의 예산이에요. 이 이야기에서 가장 취약했던 자리는 기술이 아니라 돈이었어요. 계획을 돌릴 예산은 2표 차로 겨우 통과됐고, 병이 사라진 지금도 백신 비축분과 사찰과 소문 등록소를 유지하는 데 돈이 들어요.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해가 길어질수록 이 지출은 지키기 어려워져요. 성공한 방역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이거든요.
넷째, 다른 병에 남는 자국이에요. 천연두를 대비해 만든 백신과 치료제가 엠폭스 유행에 쓰였고, 두 갈래 바늘 쓰는 법이 다시 안내됐어요. 한 병을 위해 쌓은 것이 다음 병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를 보면, 지금 어디에 투자가 쌓이고 있는지도 보여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요. 이 이야기에는 밀려난 쪽이 여럿 나와요. 인두법을 반대한 사람들은 미신에 빠진 게 아니라 이웃에게 병이 옮는 실제 위험을 본 거였어요. 1966년에 더 작게 시작하자고 한 나라들은 인색해서가 아니라 앞선 계획이 고전하는 걸 보고 있었어요. 원숭이두창이 유행성으로 번질 가능성은 없다고 본 판단도 그때 가진 자료로는 무리가 아니었고요.
그 사람들이 틀렸다고 말하기는 쉬워요. 결과를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다음 병이 지워질 때 지금 우리가 어느 쪽에 서 있을지는 아직 아무도 몰라요.
여기서 기억할 것 예측이 아니라 관전법이에요. 남은 바이러스, 마지막 구간의 비용, 조용한 해의 예산, 그리고 다른 병에 남는 자국이에요.
흔한 오해
제너가 천연두를 막는 방법을 처음 만들었다.
제너보다 앞서 인두법이 있었어요. 천연두 환자의 고름을 건강한 사람에게 넣어 가볍게 앓게 하는 방법으로, 아프리카와 인도, 중국, 오스만 제국에서 오래전부터 행해졌다고 전해져요. 제너의 기여는 사람의 천연두 대신 소의 우두를 쓴 것이에요. 훨씬 안전해졌고, 접종받은 사람이 남에게 천연두를 옮기는 문제도 사라졌어요.
백신이 나왔으니 천연두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백신이 나온 뒤로도 한 세기 반이 넘도록 병은 남아 있었어요. 강화 계획이 시작되던 해에도 33개국에서 유행 중이었고 한 해에 1,000만~1,500만 명이 걸린 것으로 추정돼요. 판을 바꾼 것은 백신 자체가 아니라 더위에 견디는 백신, 두 갈래 바늘, 발병 지점 둘레만 접종하는 방식, 그리고 그것을 돌릴 돈과 조직이었어요.
천연두는 인류가 지구에서 없앤 유일한 병이다.
사람이 걸리는 병 중에서는 맞아요. 다만 소의 전염병인 우역이 뒤이어 박멸 선언을 받아서, 지구에서 사라졌다고 선언된 질병은 둘이에요. 사람의 병으로는 소아마비와 기니충증이 마지막 구간에 들어와 있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천연두 바이러스는 이제 전부 폐기됐다.
두 곳에 남아 있어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와 러시아 벡터 연구소이고, 세계보건기구가 2년마다 두 곳을 사찰해요. 폐기 시한을 정한 결의가 있었지만 연구를 더 해야 한다는 이유로 세 차례 연장됐고, 지금은 시한 자체가 없어요.
천연두 담요를 나눠 줘서 아메리카 원주민을 몰살했다.
문서로 확인되는 시도는 1763년 포트피트의 한 건이에요. 천연두 병동에서 나온 담요 두 장과 손수건 한 장을 건넸다는 기록과 그 물품값을 청구한 문서가 남아 있어요. 다만 그 시도가 실제로 유행을 일으켰는지는 역사가들 사이에 결론이 없고, 지휘 계통에서 누가 지시했는지도 확정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한마디로
천연두는 바이러스가 사람에게만 살고, 걸리면 눈에 띄고, 조용히 옮기는 사람이 없다는 조건 덕분에 지울 수 있는 병이었어요. 그런데 백신이 나온 뒤로도 한 세기 반이 넘도록 병은 남아 있었어요. 판을 바꾼 것은 새 발견이 아니라 열에 견디는 백신과 두 갈래 바늘, 그리고 전 국민 접종 대신 발병 지점 둘레만 접종하는 방식이었어요. 그 계획을 돌릴 예산은 단 2표 차로 통과됐고, 13년 뒤 사람의 병 가운데 처음이자 지금까지 유일하게 지구에서 사라졌어요. 다만 바이러스는 아직 두 곳에 남아 있고, 천연두를 대비해 쌓아 둔 것들이 지금은 엠폭스 대응에 쓰이고 있어요.
참고 자료
본문의 연도와 숫자는 아래 자료를 근거로 씁니다. 틀린 곳을 찾으시면 알려주세요.
- WHA33.3 — 천연두 박멸 선언 결의 (1980년 5월 8일) 세계보건기구(WHO) 제33차 세계보건총회의 박멸 선언 결의
- 세계 천연두 박멸 인증위원회 최종보고서 (제네바, 1979년 12월) 세계보건기구(WHO) 1967년 33개국·인구 12억·연 1,000만~1,500만 건·사망 200만 명, 백신 합격률 31%와 유행국 사용분 15% 이하, 영국의 세 차례 실험실 유래 감염, 21개 위원회의 61개국 실사, 원숭이두창 45건과 감시 권고
- Smallpox and its Eradication 제9장 — 세계 박멸 계획의 형성, 1958~1966 세계보건기구(WHO), Fenner 외 1958년 즈다노프의 제안과 그 논리, 1959년 결의 전문, 1966년 예산 241만 5,000달러가 2표 차로 통과된 경위와 41개국·나라당 6만 달러 미만
- EB154/20 천연두 박멸: 바리올라바이러스 보유분 폐기 (2024년 1월) 세계보건기구(WHO) 집행이사회 1996년 폐기 시한과 1999·2002·2007년의 보유 연장, 두 보관소와 2년 주기 사찰, 비축분 270만 회분과 약정 2,800만 회분, 엠폭스 비상사태 기간과 116개국 9만 2,000건, 대비 태세에 관한 자문위원회 판단
- 천연두 박멸을 기념하며 세계보건기구(WHO) 뉴스, 2020년 5월 8일 20세기 사망자 3억 명 추정, 총비용 약 3억 달러, 1980년 선언 문구
- 제77차 세계보건총회 일일 소식 (2024년 5월 31일) 세계보건기구(WHO) 잔존 바이러스 보유 유지와 사찰 계속
- WHA12.54 — 천연두 박멸 결의 (1959년) 세계보건기구(WHO) 인구 80% 접종을 기준선으로 삼은 1959년 결의
- History of Smallpox (천연두의 역사)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치명률 10명 중 3명, 고대의 기록, 마지막 환자들과 1980년 선언
- About Smallpox / Signs and Symptoms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바리올라 바이러스, 잠복기 7~19일, 전파 방식
- History of smallpox vaccination (천연두 백신의 역사) 세계보건기구(WHO) 인두법의 오랜 관행, 1721년 몬터규와 매더, 1796년 제너, 지역별 종식 연도
- Edward Jenner and the history of smallpox and vaccination Proceedings (Baylor University Medical Center) — 미국 국립의학도서관 PMC 람세스 5세의 흔적, 18세기 유럽 연 40만 명과 생존자 3분의 1 실명, 보스턴 1721년의 접종 사망률 대비, 1796년 5월 14일과 1798년, 'vaccine'의 어원
- Smallpox: Vaccination (천연두 전시) 미국 국립의학도서관(NLM) 1798년 책의 번역 확산과 1807년 바이에른의 접종 의무화
- 지석영의 종두법(우두법) 전파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1879년 부산 제생의원 학습과 충주에서의 40여 명 접종, 1880년 두묘 50병, 1900년 접종자 4만 6,027명
- Smallpox Eradication in India, 1972-1977 미시간대학 도서관 온라인 전시 1974년 18만 8,003건, 한 달에 엿새씩 1억 가구 방문, 57만 5,721개 마을과 2,641개 도시
- Benjamin Rubin — 두 갈래 접종 바늘 미국 발명가 명예의 전당 1965년 특허, 재봉틀 바늘을 갈아 만든 구조와 캠페인에서의 쓰임
- William Foege 부고 — 천연두 박멸을 이끈 공중보건의 거인 STAT, 2026년 1월 나이지리아에서 감시-봉쇄를 쓴 경위와 본인이 공을 사양한 사실
- Leslie Collier Wikipedia (English) 펩톤을 넣어 동결건조하는 방법과 더위 속 안정성
- Rahima Banu Wikipedia (English) 1975년 방글라데시 볼라섬의 마지막 대두창 환자, 신고자와 포상금
- Ali Maow Maalin Wikipedia (English) 1977년 소말리아 메르카, 소두창 감염과 회복, 이후 소아마비 박멸 운동 참여
- 1978 smallpox outbreak in the United Kingdom Wikipedia (English) 재닛 파커의 근무 위치와 사망, 헨리 베드슨, 이후의 제도 변화
- Rinderpest Virus Sequestration and Use in Posteradication Era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 Emerging Infectious Diseases 우역이 천연두에 이어 박멸 선언을 받은 두 번째 질병이라는 사실
- Progress Toward Eradication of Dracunculiasis (Guinea Worm Disease)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MMWR — PMC 기니충증이 박멸 마지막 구간에 있다는 사실과 최근 발생 규모
- Investigating the Smallpox Blanket Controversy American Society for Microbiology 1763년 포트피트의 기록과 청구서, 실제 효과에 대한 역사가들의 이견
- 1721 Boston smallpox outbreak Wikipedia (English) 오네시무스가 전한 접종 관행과 보일스턴의 242명 중 6명
- Dr. Boylston Experiments with Smallpox Inoculation Mass Moments (매사추세츠 인문재단) 1721년 보스턴에서의 접종과 극심했던 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