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생명체 집단에서 환경 적응과 상관없이, 순전히 우연에 의해 특정 유전자의 비율이 변하는 현상이에요. 어떤 유전자가 특별히 유리해서가 아니라 단순한 확률에 의해 집단 전체로 퍼지거나 완전히 사라지기도 해요.
우연한 사건이 세대의 모습을 바꿔요
초록색 딱정벌레와 갈색 딱정벌레가 사이좋게 모여 사는 숲길을 상상해 볼게요. 지나가던 사람이 땅을 보지 않고 무심코 발을 디뎠는데, 하필 초록색 딱정벌레들만 밟히고 갈색 딱정벌레는 살아남았어요.
갈색 딱정벌레가 더 똑똑하거나 몸이 튼튼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에요. 그저 그 자리에 없었을 뿐인 순전한 우연과 운 덕분이었죠. 살아남은 갈색 딱정벌레들이 자손을 낳으면서, 다음 세대에는 갈색 딱정벌레가 훨씬 많아지게 돼요.
이처럼 환경에 더 잘 적응한 개체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우연한 사건이나 번식 과정의 확률 때문에 집단의 유전적 특징이 바뀌는 현상을 유전적 부동이라고 불러요.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는 뗏목처럼 유전자의 비율이 이리저리 무작위로 떠돌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어요.
집단 크기가 작을수록 우연의 힘은 거세져요
동전을 1,000번 던지면 앞면과 뒷면이 나올 비율은 거의 반반에 가까워져요. 하지만 동전을 딱 4번만 던진다면 어떨까요? 우연히 앞면만 4번 연속으로 나올 확률은 16번에 1번꼴로, 생각보다 드물지 않아요.
생물 집단에서도 똑같은 원리가 나타나요. 개체 수가 수만 마리인 거대한 무리에서는 몇 마리가 우연히 죽더라도 전체 유전자 비율에 큰 티가 나지 않아요. 많은 수가 참여할수록 평균에 가까워지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무리의 수가 고작 열 마리 남짓이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져요. 단 한두 마리만 우연히 새끼를 낳지 못해도 특정 유전자가 영원히 사라지는 일이 순식간에 벌어질 수 있어요. 집단의 크기가 작을수록 유전적 부동은 훨씬 더 파괴적이고 강한 힘을 발휘해요.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자연선택과의 결정적 차이
진화라고 하면 흔히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먼저 떠올려요. 자연선택은 환경에 더 유리한 깃털 색이나 튼튼한 날개를 지닌 생물이 살아남아 번식하는 과정이에요. 즉, 생존과 번식에 도움을 주는 뚜렷한 방향성이 존재하죠.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유전적 부동은 방향성이 전혀 없는 무작위 변화예요. 개체의 생존 능력이나 건강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심지어 생물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특징이나 약간 해로운 유전자조차도 순전히 운이 좋으면 집단 전체에 널리 퍼질 수 있어요.
산불이나 홍수 같은 거대한 자연재해로 집단 대부분이 죽고 극소수만 살아남는 '병목 효과'나, 소수의 개체가 새로운 섬으로 건너가 터전을 잡는 '창시자 효과'가 대표적인 예예요. 우연히 살아남은 소수의 유전자 구성이 그 집단의 미래를 결정짓는 것이죠.
흔한 오해
진화는 항상 환경에 더 잘 적응하고 우수한 개체만 살아남아 일어난다.
진화는 자연선택뿐만 아니라 유전적 부동으로도 일어나요. 생존에 딱히 유리하지 않거나 오히려 불리한 유전자도 순전한 우연으로 다음 세대에 널리 퍼질 수 있어요.
유전적 부동은 개체 수가 아주 많은 대규모 집단에서 더 강하게 일어난다.
반대로 개체 수가 적은 소규모 집단일수록 우연의 영향력이 훨씬 커져요. 개체 수가 많으면 우연한 사건들의 영향이 서로 어느 정도 상쇄되어, 한 세대 동안의 변화가 훨씬 작아져요. 그렇다고 큰 집단에서 부동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에요.
일상에서 만나요
산불이 나서 숲의 다람쥐 대다수가 죽고, 우연히 바위틈에 숨어 살아남은 소수의 털색이 다음 세대 숲을 지배하는 경우
새로운 무인도에 우연히 표류한 소수의 도마뱀 집단이 번식하면서 본토와 전혀 다른 유전자 구성을 갖게 되는 현상
지나가는 사람이 실수로 밟아 특정 꽃잎 색을 가진 식물들만 우연히 꺾여 자손을 남기지 못한 상황
그러니까 한마디로
적응이나 우열과 관계없이, 오직 순전한 우연 때문에 세대를 거치며 유전자의 비율이 바뀌는 현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