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화면을 한 번 보세요. 두께가 손가락 한 마디도 안 되고, 검은 부분은 제법 까맣고,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도 색이 크게 뒤집히지 않아요. 이게 당연해진 건 생각보다 최근 일이에요.
그 전의 화면은 뒤통수가 툭 튀어나온 상자였어요. 텔레비전을 옮기려면 둘이 붙어야 했고, 책상 위 모니터가 책상의 절반을 먹었어요. 그 상자가 얇은 판으로 바뀌는 사이에, 그 판을 만드는 회사의 국적이 몇 번이나 바뀌었어요. 지금 뉴스에 나오는 '디스플레이 점유율' 기사는 그 교체의 가장 최근 장면이에요.
재미있는 건 판을 넘겨준 쪽이 매번 못 만들어서 넘겨준 게 아니라는 거예요. 액정을 세상에 처음 보여 준 회사도, 벽에 거는 큰 화면을 먼저 만든 기술도 지금은 그 자리에 없어요. 그리고 이 이야기를 처음 시작한 것은 일본도 한국도 아니었어요.
한눈에 보는 연표
브라운관
- 1897 브라운, 계측기로 음극선관을 만들다
미국
- 1968 RCA, 동작하는 액정 표시장치를 공개
- 1970 RCA, 브라운관 사업을 이유로 액정을 접다
일본
- 1973 샤프 EL-805 — 액정을 쓴 첫 상용 제품
- 1988 샤프 14인치 TFT-LCD, 액정이 TV 후보가 되다
- 1995 후지쯔 42인치 컬러 PDP — 첫 벽걸이 대화면
한국
- 2001 대형 LCD 점유율에서 한국이 일본을 넘어서다
- 2007 LCD TV가 대수에서 브라운관 TV를 앞지르다
- 2007 삼성SDI, 세계 최초로 AMOLED 양산 시작
- 2013 LG전자, 55인치 OLED TV 예약판매
중국
- 2018 BOE 허페이 10.5세대 LCD 라인 양산
- 2025 중국, 디스플레이 매출 점유율 절반을 넘다
화면 한 장을 만드는 데 왜 공장이 통째로 필요할까
디스플레이는 부품이에요. 그런데 이 부품 하나 때문에 한 나라의 산업 지도가 몇 번이나 흔들렸어요. 이유는 이 물건이 만들어지는 방식에 있어요.
화면은 규격이 정해져 있어요. A사 패널과 B사 패널이 같은 자리에 꽂히고 같은 방식으로 신호를 받아요. 그래야 노트북이나 TV를 만드는 쪽이 부품을 골라 쓸 수 있으니까요. 사는 쪽에는 편한 규칙이지만 만드는 쪽에는 잔인해요. 설계로 남과 달라질 여지가 거의 없다는 뜻이거든요. 그럼 무엇으로 이길까요. 남는 건 원가예요.
원가는 유리판 한 장에서 결정돼요. 화면은 큰 유리판에 여러 장을 그린 다음 잘라서 만들어요. 반도체가 동그란 웨이퍼 한 장에서 칩을 뽑아내는 것과 같은 얼개인데, 여기서는 그 원판이 네모난 유리예요. 유리가 커질수록 버리는 자투리가 줄고 장당 값이 내려가요. 그래서 업계는 이 유리판의 크기를 '몇 세대'라고 부르며 세대를 올려 왔어요. 규모의 경제가 그대로 승부가 되는 산업이에요.
문제는 세대를 올리려면 공장을 새로 지어야 한다는 거예요. 라인 하나에 수십억 달러가 들고 짓는 데 최소 2년이 걸려요. 그 결정을 물건이 팔리기 한참 전에 내려야 해요.
여기서 이 산업 특유의 리듬이 생겨요. 값이 싸지면 새 수요가 붙어 물건이 모자라고, 모자라니 모두가 라인을 늘리고, 그 라인들이 한꺼번에 돌기 시작하면 물건이 남아돌아 값이 무너져요. 값이 무너지면 다 같이 투자를 멈추고, 몇 해 뒤 다시 모자라져요. 반도체의 실리콘 사이클과 같은 모양이라 이걸 크리스탈 사이클이라고 불러요.
그러니 이 판에서는 기술만큼이나 '언제 돈을 넣느냐'가 승부를 갈라요. 앞으로 나올 이야기에서 화면의 주인은 여러 번 바뀌는데, 바뀐 자리마다 이 규칙이 서 있어요.
여기서 기억할 것 이 규칙을 먼저 알아야, 뒤에 나오는 주인 교체가 기술력 순서가 아니라는 게 보여요.
계측기로 태어난 브라운관, 그리고 액정을 접은 회사
1897년,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의 물리학자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이 유리관 하나를 만들었어요. 관 안의 공기를 빼고 한쪽에서 전자를 쏘면 반대쪽 형광면이 빛나요. 전자의 방향을 빠르게 바꾸며 훑으면 그 자국이 그림이 돼요.
브라운이 만들려던 건 텔레비전이 아니었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고주파 교류 전기를 눈으로 보려는 계측기였어요. 그런데 이 관이 뒷날 세상의 모든 화면이 됐어요. 이름도 그의 이름을 따 브라운관이 됐고요.
브라운관에는 피할 수 없는 약점이 하나 있었어요. 전자가 날아갈 거리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화면이 커지면 관이 그만큼 깊어지고 무거워져요. 브라운관의 한계는 화질이 아니라 부피와 무게였어요.
1964년, 미국 RCA 연구소의 조지 하일마이어가 액정이라는 물질에서 이상한 성질을 찾아냈어요. 액체처럼 흐르면서도 분자가 결정처럼 한 방향으로 줄을 서 있는 상태인데, 전기를 걸면 그 줄이 흐트러지면서 빛을 흩뿌려요. 스스로 빛을 내지 않으니 전기를 거의 안 써요. 그는 벽에 거는 컬러 텔레비전이 곧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1968년 5월 28일, RCA가 뉴욕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그 화면을 공개했어요. 얇고 가볍고 전기를 안 먹는 표시장치가 처음 세상에 나온 날이에요.
그리고 2년 뒤, RCA는 이 기술의 사업화를 접었어요. 이유는 능력이 아니었어요. 그때 RCA는 브라운관을 크게 팔고 있었어요. 최고 경영진은 액정을 자기 사업에 대한 위협으로 봤어요. 하일마이어는 훗날 상용화를 맡은 사람들이 액정을 본업에서 벗어난 곁가지로 여겼다고 회고했어요. 그는 1970년에 회사를 떠났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어요.
액정 디스플레이의 여러 아이디어가 이 연구소에서 나왔어요. 그런데 그 회사는 그것들로 제품을 만들지 않았어요.
여기서 기억할 것 발명한 곳이 반드시 가져가지는 않는다는 규칙이, 산업이 열리기도 전에 먼저 얼굴을 내밀어요.
브라운관이 없던 회사들이 액정을 키웠다
액정을 제품으로 만들려면 문제가 하나 더 남아 있었어요. 처음 방식은 전압이 높아서 건전지로 돌리기 어려웠어요.
답은 유럽과 미국에서 거의 동시에 나왔어요. 액정 분자를 위아래 유리 사이에서 90도 비틀어 세워 두고, 전기를 걸어 그 비틀림을 폈다 감았다 하며 빛을 막고 통과시키는 방식이에요. 비틀린 네마틱, 줄여서 TN 모드라고 불러요. 스위스에서는 1970년 12월 4일에 특허가 출원됐고, 미국에서도 거의 같은 시기에 같은 효과에 도달한 연구자가 있어서 뒤에 특허 분쟁이 벌어졌어요. 누가 먼저였느냐는 지금도 한 사람으로 정리되지 않아요. 분명한 건 이 방식이 훨씬 낮은 전압에서 동작했다는 거예요.
이걸 제일 먼저 물건으로 만든 것은 일본의 샤프였어요. 1973년 5월 15일, 액정을 쓴 첫 시판 제품인 계산기 EL-805가 나왔어요. 두께 2.1cm로 당시 계산기의 12분의 1, 무게 200g으로 125분의 1이었어요. 소비전력은 9,000분의 1이라 AA 건전지 하나로 100시간을 썼어요. 셔츠 주머니에 들어가는 계산기가 처음 생긴 거예요.
시계 쪽에서는 세이코가 같은 일을 했어요. 손목에 차는 물건은 전기를 아낄수록 좋으니 액정과 궁합이 맞았어요.
여기서 앞 장의 이야기가 다시 돌아와요. 샤프와 세이코에는 브라운관 사업이 없었어요. 브라운관을 팔던 회사에 액정은 자기 매출을 갉아먹는 물건이었지만, 이 회사들에는 그냥 새 기회였어요. 잃을 게 없으니 망설일 이유도 없었죠.
샤프에는 조건이 하나 더 있었어요. 액정을 만드는 부서와 그 액정을 쓰는 부서를 함께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기술이 한 단계 올라갈 때마다 그 단계에 맞는 제품을 회사 안에서 찾아낼 수 있었어요. 계산기 다음엔 시계, 시계 다음엔 작은 컬러 화면. 투자를 정당화할 이유가 매번 회사 안에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액정은 오랫동안 '작은 물건에 붙는 화면'이었어요. 텔레비전은 여전히 브라운관의 몫이었고요.
여기서 기억할 것 남의 본업을 위협하는 기술은, 그 본업이 없는 회사에서 자라요. 이 편에서 여러 번 되풀이될 문장이에요.
3인치에서 14인치로 건너뛴 실험
작은 화면과 큰 화면 사이에는 기술의 벽이 하나 있었어요.
화면은 수많은 점으로 이뤄져 있어요. 점 하나가 픽셀이고, 픽셀이 가로세로로 몇 개 늘어서 있느냐가 해상도예요. 문제는 이 점들을 어떻게 따로따로 켜고 끄느냐예요. 한 줄에 전기를 흘리는 방식으로는 옆 점까지 흐릿하게 반응해서, 화면이 커질수록 그림이 뭉개져요.
해법은 점마다 아주 작은 스위치를 하나씩 붙이는 것이었어요. 그 스위치를 유리 위에 얇은 막으로 만든 것이 박막 트랜지스터, TFT예요. 점마다 자기 스위치가 있으니 그 점만 정확히 켜고 끌 수 있어요. 액정이 계산기 화면에서 텔레비전 화면으로 올라서려면 이 구조가 있어야 했어요.
1988년 6월 24일, 샤프가 14인치 풀컬러 동영상 TFT-LCD를 발표했어요. 두께 27mm로 같은 크기 브라운관의 약 13분의 1, 무게 1.8kg으로 약 4분의 1이었어요. 그때 실제로 양산되던 액정 화면은 3인치였어요.
이 패널이 어떻게 나왔는지가 재미있어요. 새 장비를 사지 않고 3인치용 설비를 그대로 쓰라는 조건이었어요. 그래서 3인치를 찍던 노광기로 큰 패널을 아홉 번 나눠 찍었어요. 배선이 길어지면 끊어질 확률이 올라가니까, 점 하나를 똑같은 네 조각으로 쪼개고 양쪽 끝에서 신호를 넣었어요. 한 군데가 끊겨도 화면이 살아남게요. 라인이 비는 시간마다 패널 한 장을 몰래 흘려보내는 식이라 시작해서 끝나기까지 반년이 걸렸고, 성한 패널은 네 장이었어요.
발표의 효과는 기술보다 신호에 있었어요. 액정이 텔레비전의 후보가 됐다는 신호요. 그때까지 연구만 하고 있던 도시바, IBM, NEC 같은 대기업들이 이 발표 뒤에 액정 산업으로 들어왔어요.
여기서 앞 장의 구도가 한 번 더 확인돼요. 브라운관 사업을 갖고 있던 회사들이 액정 산업에 들어온 것은 바로 이 시점이었어요. 그들이 액정을 몰랐던 게 아니에요. 자기 공장이 아직 잘 돌고 있는 동안에는 움직일 이유가 없었을 뿐이에요.
여기서 기억할 것 액정이 TV의 후보가 된 날이자, 누가 늦게 들어왔는지가 기록된 날이에요.
값이 바닥일 때 공장을 지은 쪽이 가져갔다
1990년대 초의 액정 패널은 사실상 일본의 물건이었어요. 패널만이 아니라 재료와 부품, 장비까지 한 나라 안에 갖춰져 있었어요.
한국 회사들이 여기에 들어가려는데 기술을 넘겨줄 곳이 없었어요. 그래서 일본 제품을 사서 뜯어보는 데서 시작했다고 전해져요. 도움이 된 건 반도체였어요. 액정 패널을 만드는 공정은 반도체 공정과 겹치는 대목이 많아서, 그쪽에서 쌓인 경험을 그대로 옮겨 쓸 수 있었어요. 1994년 10월에 시제품이 나왔고, 1995년 8월에 LG가 구미 공장에 4억 달러를 넣어 라인을 지었고, 이듬해 현대전자가 인천에 라인을 세웠어요.
진짜 승부는 그다음이었어요. 1995년과 96년 사이, 시장이 가라앉아 다들 투자를 줄이던 때에 한국 회사들이 최신 세대 라인에 돈을 넣었어요. 값이 떨어지고 생산이 줄고 남들이 물러설 때 짓는 거예요. 라인은 짓는 데 몇 년이 걸리니까, 불황에 시작하면 다음 호황이 왔을 때 이미 물건을 내고 있게 돼요. 맞으면 판이 뒤집히고 틀리면 회사가 통째로 흔들리는 선택이었어요.
밀려난 쪽에도 이유가 있었어요. 일본 회사들은 유리판 세대를 한 단계씩 밟아 올리고 있었어요. 10.1인치용, 11.3인치용, 12.1인치용 순서로요. 위험을 나눠 지는 합리적인 방식이에요. 그런데 시장이 10.1인치에서 중간 단계를 건너뛰고 12.1인치로 갔어요. 중간에 넣은 돈이 회수되지 못했어요.
두 번째 이유는 회계였어요. 일본 업체의 투자 규모는 전년도에 얼마를 벌었느냐에 좌우되는 구조였어요. 그런데 1998년부터 2002년 사이 일본 LCD 업체들의 영업손익은 마이너스였고, 같은 기간 한국 업체는 플러스였어요. 돈을 넣고 싶어도 넣을 수 없는 해가 몇 년 이어졌던 거예요. 기술이 아니라 장부에서 갈린 대목이에요.
대형 LCD 패널의 국가별 점유율에서 한국이 일본을 넘어선 건 2001년으로 기록돼요. 한국 회사가 시장에 들어간 지 예닐곱 해 만이었어요. 그다음 IT 거품이 꺼져 시장이 다시 주저앉자 한국 회사들은 2002년과 2003년에 또 한 번 같은 도박을 했고, 2003년 하반기부터 노트북 수요가 뛰면서 그 투자가 맞아떨어졌어요.
다만 순위는 기준에 따라 달랐어요. 2005년에는 대만이 생산 수량 기준으로 1위에 올랐어요. 매출 기준으로는 한국이 앞섰고요. 한국 회사가 만들던 패널이 더 커서 장당 값이 높았거든요. 수량 1위와 매출 1위가 다른 나라였던 해예요.
여기서 기억할 것 밀려난 쪽은 못 만들어서 밀린 게 아니었어요. 돈을 넣을 수 없는 해에 판이 갈렸어요.
졌던 길들 — 벽걸이 화면을 먼저 만든 건 액정이 아니었다
여기서 흔히 건너뛰는 대목이 있어요. 브라운관에서 액정으로 곧장 넘어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사이에 다른 길이 몇 개 있었어요.
먼저 플라스마예요. 유리 두 장 사이에 아주 작은 방을 촘촘히 만들고 가스를 채운 다음 전기를 걸면 그 방 안에 플라스마가 생겨요. 거기서 나온 자외선이 형광체를 때려 빛을 내요. 점마다 스스로 빛을 내니까 큰 화면을 만들기가 액정보다 쉬웠어요.
실제로 그랬어요. 후지쯔가 1992년 10월에 상용 21인치 컬러 플라스마 패널을 냈고, 1995년 8월 24일에는 42인치를 발표했어요. 852×480 해상도에 두께 75mm, 무게 18kg이었어요. 샘플 가격이 100만 엔, 양산가 목표가 50만 엔이었고요. 1996년 11월 28일에는 세계 최초로 42인치 양산에 들어갔어요. 미야자키 공장을 월 1만 대 규모로 설계했어요. 브라운관으로는 불가능하던 '벽에 거는 큰 화면'을 먼저 현실로 만든 건 액정이 아니라 플라스마였어요.
그런데 플라스마에는 구조적인 약점이 있었어요. 작은 방을 하나하나 만들어야 해서 화면이 작아질수록 값이 안 맞았어요. 노트북이나 모니터로는 갈 수가 없었던 거예요. 반면 액정은 노트북에서 모니터로, 모니터에서 TV로 몸집을 키우면서 그때마다 유리판 세대를 올렸어요. 그 과정에서 원가가 계속 내려갔고, 결국 큰 화면에서도 플라스마를 따라잡았어요. 파나소닉은 2013년 12월에 플라스마 생산을 끝냈어요.
또 하나는 SED였어요. 브라운관은 전자를 쏘는 총이 하나라 관이 깊어지는데, 그 총을 아주 작게 만들어 점마다 하나씩 깔면 얇은 판에서도 브라운관의 화질이 나와요. 캐논이 1980년대에 시작해 도시바가 뒤에 합류했어요. 밝기가 브라운관에 가깝고 빠르게 움직이는 화면에서 잔상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소니는 비슷한 원리의 FED를 밀었고요.
그런데 원가를 액정과 플라스마 수준까지 내릴 수가 없었어요. 여기에 특허 소송이 붙었고 금융위기가 겹쳤어요. 도시바가 먼저 손을 뗐고 캐논은 2010년에 사업을 접었어요.
세 기술이 갈린 자리는 화질이 아니라 원가였어요. 그리고 원가는 유리판 크기와 라인 규모에서 나왔죠. 앞 장에서 본 규칙 그대로예요.
여기서 기억할 것 진 기술에도 그때의 근거가 있었어요. 이 판에서 판정을 내리는 건 화질이 아니라 원가예요.
한국이 일본을 넘어선 그 규칙이, 이번엔 한국을 밀어내다
브라운관이 밀려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어요. 매출 기준으로는 2005년 4분기에 LCD TV가 브라운관 TV를 넘어섰는데, 대수로는 여전히 브라운관이 더 팔리고 있었어요. 대수까지 뒤집힌 건 2007년 4분기예요. 디스플레이서치 집계로 LCD TV가 전체 판매 대수의 47%, 브라운관이 46%였어요. 브라운관이 태어난 지 110년 만이었어요.
그다음은 빨랐어요. 삼성SDI 지속가능경영보고서가 삼성경제연구소 자료를 인용한 것을 보면, 브라운관 TV 판매 대수는 2009년 5,300만 대에서 2010년 4,300만 대로 줄었고 2011년에는 2,800만 대 수준으로 내려갈 것으로 봤어요. 십 년 넘게 버티던 것이 몇 해 만에 사라진 거예요.
그사이 새 주자가 들어와 있었어요. 중국의 BOE가 2003년에 한국 하이디스의 LCD 사업을 인수하면서 대형 LCD 판에 발을 들였어요. 그리고 2018년 3월, 허페이에 세운 10.5세대 라인이 양산에 들어갔어요. 세계에서 가장 큰 유리판을 쓰는 라인이라 65인치나 75인치 같은 큰 TV 패널을 자투리 없이 잘라 낼 수 있었어요. 이 산업의 규칙 그대로, 유리가 커지자 장당 값이 내려갔어요.
설비투자의 규모도 달랐어요. BOE는 2023년 공시에서 그해 정부 보조금 약 5억 3,600만 달러를 받았다고 밝혔어요. 한 해 한 회사의 숫자지만, 이 산업의 투자가 어느 규모에서 돌아가는지는 보여 줘요.
그다음에 온 게 치킨 게임이에요. 수요가 꺾여도 아무도 감산하지 않고 오히려 만들어서, 원가가 높은 쪽이 먼저 손드는 걸 기다리는 싸움이에요. 2022년 5월에는 55인치 이하 LCD TV 패널 값이 현금원가 아래로 떨어졌어요. 만들수록 현금이 줄어드는 값이라는 뜻이에요. 그해 6월 초에도 32인치와 43인치가 한 주 사이에 5~6달러, 55인치가 7달러, 65인치와 75인치가 12~14달러씩 더 내려갔어요.
결과는 앞 장과 같은 모양이었어요. 삼성디스플레이가 2022년 6월에 TV용 LCD 패널 생산을 끝냈어요. 30년 만의 철수였어요. LG디스플레이는 2024년 9월에 광저우 공장을 중국 TCL CSOT에 2조 300억 원에 넘기기로 했고, 이듬해 초에 마무리됐어요.
숫자로 보면 이래요. 시노리서치 집계로 2025년 상반기 세계 디스플레이 패널 매출은 562억 달러였고, 매출 기준 국가별 몫은 중국 52.1%, 대만 13.2%, 일본 3.5%였어요. 중국이 절반을 처음 넘긴 반기예요. 같은 해 옴디아 자료를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가 분석한 매출 기준으로, 한국의 LCD 점유율은 7.9%까지 내려왔어요. 전년의 10.2%에서 더 줄어든 값이에요.
소수의 회사가 시장을 나눠 갖는 독점과 과점 구조에서는 한 곳의 라인 하나가 곧바로 순위를 흔들어요. 한국이 일본을 넘어설 때 작동한 규칙이, 이번에는 방향을 바꿔 한국에게 왔어요.
여기서 기억할 것 원가를 먼저 낮춘 쪽이 가져간다는 규칙은 그대로였어요. 이번에 밀려난 쪽이 한국일 뿐이에요.
OLED — 40년 만에 되풀이된 같은 순서
1987년, 미국 코닥의 두 연구자가 유기물을 두 층으로 쌓은 발광 소자를 논문으로 발표했어요. 낮은 전압에서 실제로 빛이 나는 구조를 처음 보인 논문이에요. OLED의 출발점이고, 액정과 마찬가지로 미국 회사의 연구소에서 나왔어요.
무엇이 달라지는지부터 볼게요. 액정은 스스로 빛을 못 내요. 그래서 뒤에 조명을 켜 두고 그 빛을 막았다 통과시켰다 해요. 검은 화면을 만들어도 뒤의 조명은 켜져 있으니 완전히 까매지지 않고, 화면 가장자리로 빛이 새어 나오는 빛샘 현상도 생겨요. OLED는 점마다 유기물이 직접 빛을 내니까 꺼진 점은 그냥 꺼져요. 조명을 깔 필요가 없어 화면이 얇아지고, 검은색이 진짜 검은색이 돼요.
덤도 있어요. 꺼진 점은 전기를 안 쓰니까 시계나 알림만 계속 띄워 두는 AOD 기능이 가능해요. 대신 오래 켜 둔 부분이 남는 OLED 번인 같은 문제가 따라와요. 어느 방식이든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어요.
그다음 순서가 익숙해요. 첫 상용 제품은 일본에서 나왔어요. 1997년에 파이어니어가 카오디오용 표시장치에 OLED를 넣었다고 알려져 있어요. 논문에서 10년 만이었어요.
양산은 한국이 가져갔어요. 삼성SDI는 2007년 9월에 세계 최초로 AMOLED 양산을 시작했다고 회사 연혁에 적고 있어요. 스마트폰이 막 퍼지기 시작하던 시기였고, 얇고 전기를 아끼는 화면이 딱 필요한 물건이었죠.
TV는 더 걸렸어요. 2013년 1월 2일, LG전자가 55인치 OLED TV의 국내 예약판매를 발표했어요. 가격은 1,100만 원, 패널 두께는 4mm, 무게는 10kg이 안 됐어요. 빨강·초록·파랑에 흰색 부화소를 하나 더 얹은 방식이었어요.
미국이 발명하고, 일본이 첫 제품을 만들고, 한국이 양산을 가져갔어요. 액정에서 본 순서가 40년 만에 그대로 되풀이된 거예요.
지금은 어떨까요. 옴디아 자료를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가 분석한 매출 기준으로, 2025년 OLED 점유율은 한국 68.7%, 중국 31.2%였어요. 중국이 이 시장에 들어온 뒤 줄곧 내려가던 한국 점유율이 처음 올라간 해이기도 해요. 시장을 좁혀 보면 격차가 더 벌어져요. 유비리서치 집계로 9인치 이상 대형 OLED에서 한국의 몫은 92.4%이고, 그 안의 TV용에서는 LG디스플레이가 81%, 삼성디스플레이가 19%였어요.
다만 같은 자료가 중국 업체의 합산 OLED 점유율이 50%에 가까워졌다고도 적어요. 어느 시장의 어느 기준인지에 따라 정반대로 읽히는 숫자들이에요.
여기서 기억할 것 액정에서 본 순서가 OLED에서 반복됐어요. 그리고 지금은 그다음 장면이 진행 중이에요.
다음 판이 열릴 때 어디를 보면 될까
앞일을 맞히려 들 필요는 없어요. 대신 이 이야기가 알려 준 규칙에 비춰, 무엇을 보고 있으면 판이 움직이는 걸 먼저 알아챌 수 있는지만 정리해 볼게요.
첫째, 유리판이 커지는 순간이에요. 이 산업에서 순위가 흔들린 자리는 대체로 세대가 바뀌는 지점이었어요. 한국이 일본을 넘어선 것도, 중국이 큰 TV 패널의 원가를 바꾼 것도 새 세대 라인에서 벌어진 일이에요. 지금 관심이 몰리는 건 노트북과 태블릿에 들어갈 IT용 OLED 라인이에요. 어느 나라가 다음 세대 라인을 먼저 안정적으로 돌리느냐를 보면 돼요.
둘째, 숫자를 읽는 법이에요. 이 편에 나온 점유율만 해도 기준이 제각각이었어요. 같은 해에 '한국 OLED 68.7%'와 '한국 대형 OLED 92.4%'와 '중국 52.1%'가 전부 맞는 말이에요. 앞의 둘은 시장 범위가 다르고, 셋째는 OLED가 아니라 디스플레이 전체이고 반기 기준이에요. 수량 1위와 매출 1위가 다른 나라였던 해도 있었고요. 어느 기관이, 언제, 무슨 기준으로 낸 숫자인지가 빠진 순위 기사는 그것만으로 절반쯤 틀린 문장이에요.
셋째, 중국의 투자 시점과 규모예요. 판을 가져간 쪽은 남보다 큰 유리판으로 원가를 먼저 낮춘 쪽이었어요. 한국은 그 결정을 값이 바닥일 때 내렸고요. 그래서 지금 어느 라인이 언제 착공했는지가 몇 해 뒤의 순위를 미리 알려 줘요. 전망도 나와 있어요. 옴디아는 2030년 OLED 점유율을 중국 42%, 한국 58%로 내다보고, 유비리서치는 2029년에 중국이 한국을 앞지를 것으로 봐요. 둘 다 전망이지 확정이 아니에요. 앞선 60년에서 전망이 그대로 맞은 적도, 크게 빗나간 적도 있었어요.
넷째, 다음 불황이에요. 크리스탈 사이클이 사라진 적은 없어요. 값이 무너지는 날 누가 라인을 붙잡고 있는지 — 지금까지 다음 주인은 그 자리에서 갈렸어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요. 이 이야기에서 밀려난 쪽은 대부분 못 만들어서 밀린 게 아니었어요. RCA는 액정 화면을 세상에 처음 보인 회사였고, 샤프는 3인치밖에 못 만들던 시절에 14인치를 만든 회사였고, 후지쯔는 벽에 거는 큰 화면을 먼저 현실로 만든 회사였어요. 각자 그때의 자리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했고, 그 판단이 다음 판에서 짐이 됐을 뿐이에요.
다음 차례가 누구일지는 아직 아무도 몰라요. 다만 그 자리가 어디쯤일지는, 여기까지 읽었다면 대충 짐작이 갈 거예요.
여기서 기억할 것 예측이 아니라 관전법이에요. 세대 전환, 숫자의 기준, 중국의 투자, 그리고 다음 불황 — 네 곳이에요.
흔한 오해
액정 화면은 일본이 발명했다.
동작하는 액정 표시장치를 처음 공개한 것은 미국의 RCA 연구소예요. 일본이 가져간 건 발명이 아니라 상용화와 대량생산이었어요. 액정을 건전지로 돌릴 수 있게 만든 TN 모드도 스위스와 미국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나왔고, 누가 먼저였는지는 지금도 한 사람으로 정리되지 않아요.
브라운관 회사들은 액정이 뜨는 걸 못 알아봤다.
알아봤지만 자기 사업이 걸려 있었어요. 액정을 처음 공개한 회사부터가 브라운관을 크게 팔고 있었고, 경영진은 액정을 그 사업에 대한 위협으로 봤어요. 브라운관 사업을 갖고 있던 대기업들이 액정 산업에 들어온 것은 14인치 패널이 나온 뒤였고요. 몰라서가 아니라 이미 잘되는 사업이 있어서 늦었어요.
한국은 브라운관 시대에는 없다가 액정으로 갑자기 올라섰다.
한국은 브라운관 시대에도 큰 생산국이었어요. 삼성SDI는 1987년 10월에 세계 최초로 브라운관 누적 5,000만 개를 생산했다고 회사 연혁에 적고 있어요. 액정으로 올라선 것도 맨땅에서가 아니라 반도체와 브라운관에서 쌓인 대량생산 경험 위에서 벌어진 일이에요.
플라스마는 처음부터 액정에 밀리던 기술이었다.
큰 화면을 먼저 현실로 만든 건 플라스마예요. 42인치 컬러 패널이 발표되고 양산에 들어간 건 대형 액정 TV가 자리 잡기 한참 전이에요. 밀린 이유는 화질이 아니라 원가였어요. 작은 화면에서 값이 안 맞아 노트북이나 모니터로 갈 수 없었고, 액정이 커지면서 싸지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어요.
중국은 아직 쫓아오는 중이다.
시장을 나눠 봐야 해요. 시노리서치 집계로 2025년 상반기 디스플레이 패널 매출에서 중국은 52.1%로 절반을 넘겼어요. LCD에서는 이미 앞섰다는 뜻이에요. 쫓고 있는 쪽은 OLED이고, 그 시장에서는 같은 해 옴디아 자료를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가 분석한 매출 기준으로 한국 68.7%, 중국 31.2%였어요.
점유율 1위는 하나로 정해져 있다.
기준에 따라 달라요. 2005년에는 수량 기준 1위 나라와 매출 기준 1위 나라가 달랐어요. 큰 패널일수록 장당 값이 높기 때문이에요. 시장 범위도 문제예요. 같은 해에 'OLED에서 한국 68.7%'와 '9인치 이상 대형 OLED에서 한국 92.4%'가 둘 다 맞는 말이에요. 어느 기관의, 언제, 무슨 기준인지가 빠진 순위는 절반쯤 틀린 문장이에요.
그래서 한마디로
액정 화면은 미국 RCA 연구소에서 나왔지만, 그 회사가 브라운관을 팔고 있었기 때문에 사업화되지 못했어요. 대신 브라운관 사업이 없던 샤프와 세이코가 계산기와 시계에서 액정을 키웠고, 14인치 패널이 나온 뒤에야 브라운관 대기업들이 들어왔어요. 그다음 판은 값이 바닥일 때 라인을 지은 쪽이 가져갔어요. 한국이 그렇게 일본을 넘었고, 지금은 중국이 같은 방식으로 LCD를 가져가 매출 기준 절반을 넘겼어요. OLED에서도 발명은 미국, 첫 제품은 일본, 양산은 한국이라는 순서가 그대로 되풀이됐고, 그다음 장면이 지금 진행 중이에요.
참고 자료
본문의 연도와 숫자는 아래 자료를 근거로 씁니다. 틀린 곳을 찾으시면 알려주세요.
- 액정 디스플레이의 역사 (The History of Liquid-Crystal Displays) Hirohisa Kawamoto, Proceedings of the IEEE 1968년 RCA 기자회견과 1970년의 사업 중단, TN 모드의 동시 발명, EL-805의 사양, 1988년 14인치 패널의 제작 경위와 그 뒤 대기업들의 진입
- 세계 최초의 액정 계산기 EL-805 샤프 액정을 쓴 첫 시판 제품이라는 회사의 서술
- 세계 최초의 14인치 컬러 TFT LCD 샤프 1988년 14인치 컬러 TFT LCD 시제품의 개발 경위
-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 — 오늘의 과학자 Linda Hall Library 1897년 음극선관의 제작과, 텔레비전이 아니라 고주파 전기를 관찰할 계측기로 고안됐다는 사실
- 한국 LCD 산업의 성공 요인 (The Success of Korean LCD Industry in East Asia) 한인수·오근엽, Asian Social Science 크리스탈 사이클, 두 차례의 역주기 투자, 일본 업체의 순차 투자와 영업손익 구조, 2001년 대형 LCD 점유율 역전, 2005년 수량 1위와 매출 1위의 불일치
- 후지쯔, 세계 최초의 상용 42인치 와이드 컬러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발표 후지쯔 보도자료 아카이브 42인치 PDP의 해상도·두께·무게·가격, 1992년 10월 21인치 상용 컬러 PDP에 대한 회사의 서술
- 후지쯔, 세계 최초로 42인치 컬러 PDP 양산 후지쯔 보도자료 아카이브 1996년 양산 개시와 미야자키 공장의 생산 규모
- 삼성SDI 회사 연혁 삼성SDI 1987년 10월 세계 최초 브라운관 누적 5,000만 개 생산, 2007년 9월 세계 최초 AMOLED 양산
- 삼성SDI 지속가능성보고서 삼성SDI 조사기관 보고를 인용한 브라운관 TV 판매 대수의 급감 추이
- 세계 LCD TV 판매가 브라운관을 넘어서다 (디스플레이서치 집계 보도) The Register 2007년 4분기 대수 기준 역전(47% 대 46%)과 2005년 4분기 매출 기준 역전
- 스티븐 밴슬라이크 — 미국 발명가 명예의 전당 National Inventors Hall of Fame 코닥에서의 OLED 개발과 관련 미국 특허
- OLED의 역사 Ossila 1987년 탕·밴슬라이크의 논문과 두 층 구조, 1997년 파이어니어의 첫 상용 제품
- LG, 기다리던 OLED TV 출시를 시작하다 LG 글로벌 뉴스룸 55인치 OLED TV의 예약판매 발표일, 가격 1,100만 원, 두께 4mm와 무게, 흰색 부화소를 더한 방식
- 캐논, SED TV의 종료를 알리다 PCWorld / IDG News Service SED 사업 종료와 그 이유 — 원가를 액정·플라스마 수준으로 내리지 못한 점, 특허 소송, 도시바의 이탈
- LCD TV 패널 값 사상 최저 — 3분기 감산 (2022년 6월) TrendForce 55인치 이하 패널이 현금원가 아래로 떨어진 시점과 크기별 주간 하락 폭
- 파나소닉, 플라스마 TV 사업 철수 확정 FlatpanelsHD 플라스마 TV 생산 종료 시점과 사업 정리 일정
- 삼성디스플레이, TV용 LCD 패널 생산 종료 Businesskorea TV용 LCD 생산 종료 시점과 30년 만의 철수라는 서술
- LG디스플레이, 광저우 공장 매각으로 대형 LCD 사업을 마무리 KED Global 광저우 LCD 공장의 매각 금액과 이전 완료 시점
- 훙하이·샤프, 4년 만에 계약 서명 Taipei Times 훙하이의 샤프 지분 인수 계약
- 재팬디스플레이 Wikipedia 소니·도시바·히타치의 중소형 LCD 사업 통합 경위
- BOE Technology Wikipedia 하이디스 인수를 통한 대형 LCD 진입 경위
- BOE, 허페이에 초대형 LCD 패널 공장을 공개 Global Times 허페이 10.5세대 라인의 착공과 양산 시점
- BOE Technology의 2023년 정부 보조금 수령 공시 Global Trade Alert 증시 공시에 따른 그해 정부 보조금 규모
- 한국 OLED, 2025년 점유율 68.7% — 중국 추격 속 10년 만에 반등 산업종합저널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의 옴디아 자료 분석 인용) 매출 기준 OLED 점유율 한국 68.7%·중국 31.2%, 한국 LCD 점유율 7.9%, 전체 디스플레이 점유율 31.7%
- 중국,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 점유율 50% 첫 돌파 디지털타임스 (시노리서치·옴디아 자료 인용) 2025년 상반기 매출 기준 국가별 점유율과 세계 패널 매출, 옴디아의 2030년 OLED 전망
- 2030년 중대형 OLED 200억 달러 전망 — 한국, 92% 점유 유지 테크월드뉴스 (유비리서치 보고서 인용) 9인치 이상 대형 OLED에서 한국 92.4%, TV용 OLED 안의 업체별 몫, 2029년 추월 전망
- K-디스플레이, 중국 공세에도 글로벌 점유율 33.1% 선방 디지털투데이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발표 인용) 2024년 기준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 매출과 세계 점유율, 세계 OLED 시장 규모